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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Aug 15. 2020

친구들과의 첫 여행

부산 편(1)

  누군가 내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일단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나는 기독교라고. 물론 지금의 날 보고 "네가?"라고 할지 모르겠다. 고등부 때의 담당 목사님께서 우리가 고3이었던 5월에 교회에서 사임하시고 부산에 내려가 교회를 개척하셨다. 


  수능이 끝나고, 가고 싶은 대학에 원서도 다 넣은 후라 별로 할 일이 없었던 나는 함께 교회를 다니던 친구 4명과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 당시엔 학생이었으니 당연히 무궁화호를 탔고, 7시 24분발 기차는 장장 5시간이 걸려서야 부산 구포역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 어찌나 허리가 아프던지, 그나마 다행히 평일이라 기차에 빈자리가 많아 우리는 두 자리씩 차지하고 막 누워서 자면서 이야기하면서 먹으면서 그렇게 기차여행을 했다.


  구포역에 내리니 목사님께서 마중을 나와 주셨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첫날은 전도를 다니고, 저녁에 가볍게 농구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참 혈기왕성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도 농구를 할 기운이 남아 있었던 걸까. 수요예배까지 마치고 우리 남자 다섯은 그대로 교회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9시, 10시가 되어서야 일어난 우리는 목사님과 함께 부산 지하철을 타봤다. 서울 지하철과 비슷한 듯 다른 부산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자갈치 시장. 해산물을 즐겨 먹지 않는 나로서는 비린내가 많이 나서 힘들긴 했지만 신기한 장면들을 많이 보았다. 점심은 자갈치 시장 안에서 회를 먹고, 용두산 공원 전망대와 국제시장을 구경했다. (이때는 아직 영화 <국제시장>이 제작되기도 전이었다.) 뒤이어 간 곳은 태종대 바닷가. 오랜만에 보는 진짜 겨울바다는 시리도록 차가우면서도 한산함 속에 뭔지 모를 운치가 담겨 있었다. 거기에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한 잔씩 파시는 아주머니까지 계셔서 따스한 커피 한 잔을 받아 드니 정말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저녁에는 다시 시내로 나와 광안리로 나왔다. 지금이야 광안대교도 있고 엄청 붐비는 곳이지만 내 기억에 당시만 해도 광안대교가 한창 공사 중이었고, 그럼에도 야경은 멋있었다. 그때의 야경은 내가 처음으로 본 바닷가 야경이자, 지금껏 잊을 수 없는 멋진 야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우리는 다시 서울로 가기 위해 구포역으로 향했다. 목사님과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12시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2박 3일 동안 피곤했는지 다들 기차 안에서 거의 죽은 듯이 잠만 잔 것 같다. 


  처음 갔던 부산은 내게 참 좋은 기억을 많이 안겨 주었다. 그래서일까. 그 뒤로도 나는 다른 곳보다 제법 많이 부산을 찾았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첫 여행지이기도 하고, 항상 그곳에 가면 목사님이 반겨주시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부산에 가서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부산이 좋았다. 그것도 이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같이 갔던 친구들 중에서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는 이는 S군 한 명뿐이다. 다른 친구들도 다 잘 살고 있겠지?

(다들 나보다는 돈도 잘 벌고 잘 살고 있을 텐데,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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