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발레일기 14
지난 토슈즈 구매기에서도 썼듯이 RAD 발레 시험이 끝난 뒤 중급반으로 업그레이드를 명 받았다. 초급반에서 6개월 정도 수련을 하면 중급반에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다리도 못 찢고 동작도 아직 헤매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선뜻 승급에 대한 마음을 먹기가 어려웠다.
시험을 기점으로 성장한 느낌을 받아 얻게 된 한 움큼의 자신감과 한 손 바 충분히 할 수 있으면 중급반 올라와도 된다는 선배 메이트들의 꼬심에 넘어가 중급반 등록을 마쳤다. 우리 학원의 경우 초급반과 중급반의 가장 큰 차이는 바 워크인데 초급반은 두 손 바 워크를, 중급반은 한 손 바 워크를 진행한다.(바를 두 손으로 잡느냐, 한 손으로 잡느냐의 차이라는 이야기) 이제 코어에 힘도 좀 생겼는데 한 손 잡고도 괜찮겠지 생각했던 건 나의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나의 큰 착각은 첫 순서부터 단번에 무너졌다. 중급반은 초급반 순서를 단순히 한 손으로만 잡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본 동작에 더해 손 동작, 시선까지. 3단 콤보가 팡팡 터지면서 사고를 마비시키는 느낌. 눈으로 순서 따라가랴, 동작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가 초급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몸 방향까지. 앙파스(앞), 데리에(뒤), 알라스공 (양 옆) 4방향에 대각선 방향까지 새로 더해진다. 무대를 보고 45도 정도 비켜서는 크로아제 (크로아제 드방, 크로아제 데리에), 반대로 열린 방향의 에파세 (에파세 드방, 에파세 데리에), 옆 사선 방향으로 다리가 반대로 가는 에카르테 (에카르테 드방, 에카르테 데리에)까지. 지금 이렇게 쓰면서도 무슨 방향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급기야 수업 마지막에는 머리와 몸 전체가 일시 정지 되어 버리는 지경까지. 첫날부터 빡세게 신고식을 치르고야 말았다.
게다가 중급반 수업이 더 어려운 건 바를 일자로 놓고 한 손씩 잡고 동작을 하다 보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방향이 반대라는 것! 몸 방향도 반대, 다리도 반대, 손도 반대다 보니 옆 사람을 보고 동작 따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꼬이는 총체적 난국.. 분명 초급은 grade 1, 중급은 grade 1.5라고 써있었는데 체감 상 grade 5, 아니 100정도 되는 것 같은 느낌.
손 따로 발 따로 허우적거리던 한 시간 반을 보내고 연습실 밖을 나와 털썩 주저 앉았다. ‘우와 이거 어떡하지, 다시 초급으로 내려간다고 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지연님 오늘 수업 어떠셨어요?” “선생님 전 아직 중급은 아닌가 봐요” 애처로운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니 처음엔 원래 그렇고 점차 적응해 가면서 나아질 거라고 위로해주셨다. 순서가 점차 눈에 들어오면서 동작이 익숙해질 거고, 패턴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순서를 즐기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당장 수업만 들어가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헤맬 거라 생각하니까 속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선생님 말대로 수업이 점차 진행되면서 순서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덜 헤매게 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순간, 감정도 한때가 되려나 생각하며 중급반 적응의 고군분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