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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Nov 13. 2023

우리가 로또를 사야하는 이유

이번 주 로또에 당첨됐다. 그래봐야 고작 5만 원이었지만 4등 당첨은 처음이라 매우 기쁘다. 당첨된 사실을 알게 된 후 어제오늘 지갑을 열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 맞다 나 로또 4등 당첨된 사람이었지 하하.


처음 입사해서 배정받은 팀은 지난 16년을 통틀어 가장 힘든 팀이었다. 승무원들끼리는 같이 일하기 까다로운 승무원을 '블랙'이라고 부른다. 한 팀에 블랙 선배가 한 명만 있어도 곡소리 난다고들 했는데 그 당시 팀에는 부팀장을 포함해 대여섯 명의 블랙이 있었다. 나쁜 의미로 어벤저스 같은 팀이었다. 블랙펜서들 같은 게 더 어울릴라나? 물론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라서 블랙이 아닌 내 문제였을 수도 있다. 나이도 어렸고 일도 미숙했고 지금보다 겁도 많을 때였으니까.


이 시절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자리에서 회사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는데 동창 하나가 "옛다"하면서 로또 한 장을 내밀었다. 불쌍한 녀석, 선물이다. 야 너 이거 일등 당첨되면 바로 일등석 끊고 너 힘들게 한다는 그 승무원 막 부려먹어, 어때?


한 동안 친구가 준 로또를 플라잇백에 넣고 다녔는데 큰 위안이 되었다. 다른 직장인들은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출퇴근한다던데 나는 로또가 사직서 같은 역할을 했다. 여차하면 확 때려친다!


그때부터 간간히 로또를 산 덕에 힘든 막내 생활을 잘 버틴 것 같다. 팀이 바뀐 뒤부터는 로또를 사지 않았다. 운 좋게 다 좋은 선배와 팀원들을 만난 덕분이었다.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점점 쓸만한 팀원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다 코로나 때 또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당첨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라도 희망을 갖고 싶었다. 코로나가 종식된 뒤에는 로또를 사지 않았다. 어디선가 '행복한 사람은 로또를 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내가 딱 그 짝이었다. 힘들 때만 로또를 찾았다.


최근 또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삶이 힘들어서 산 건 아니다. 얼마 전 미국의 신경심리학자가 쓴 <기회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복권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미국에는 4번이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다. 누적 상금이 무려 2천만 달러, 지금 환율로 260억이 넘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확률적으로는 제로에 가까운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결론만 찾아 읽었다) 운이 좋은 사람은 운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늘 ‘기대’를 품고 산다. 4번이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직업은 놀랍게도 수학자였는데 그녀는 무려 30년 동안 꾸준히 복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즉, 복권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30년 동안 유지했던 것이다.


똑같은 회사에 입사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 회사의 사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냥 받는 월급만큼만 일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가 품는 자기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그 사람의 운을 바꾸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전부 운에 좌우되는 건 아닐 것이다. 단, 기대를 품지 않으면 그 기대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제로라는 점은 중요한 얘기 같다. 또 기대를 품으면 그 기대에 상응하는 행동도 자연스레 뒤따르기 마련이므로, 결과적으로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 제로에서 더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운이라고 부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로또 5만 원 당첨된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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