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니C Nov 11. 2023

전념하고 계신가요?


예전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 자리에서 친구 하나가 물었다. 직업으로 승무원을 선택한 걸 후회한 적 없어? 후회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승무원이 아니라 다른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종종 상상해 본 적은 있다고 답했다.


이후 코로나가 덮쳤고 강제로 3년을 쉬면서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던 와중에 <전념>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현대인의 삶은 '수많은 방이 있는 복도에 그냥 서 있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했다. 인생을 호텔이라고 치면 우리네 삶의 목표는 하염없이 복도에 서서 서성거리는 게 아니라 어떤 공간에 안착하는 것이다.  어느 방이든 정한 뒤 그 방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방이 너무 여럿이면 어느 방에 들어가야 할지 망설이게 되고 그러다 내내 복도에 서서 고민만 하게 되는데 이게 마치 현대인의 삶과 닮았다는 의미다.


농구 선수 서장훈 씨가 어느 방송에서 집에 돌아가면 배달앱을 켜고 뭘 먹을지 고민만 하다 결국 잠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 같다. 배달 메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이런 수많은 선택지로 인한 고민은 우리 일상에 비일비재하다. 나만 해도 넷플릭스를 켜고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볼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아무 선택도 못하고 잠자리에 든 적이 여러 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선택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 오히려 단점이 된 것 같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크 래퍼의 연구에 따르면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사람들은 오히려 '선택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마트의 시식 코너를 이용해 실험을 했는데, 6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는 시식한 사람의 30%가 잼을 구매했다. 하지만 24종류로 늘어나자 잼을 산 사람은 3%에 불과했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그에 비례해서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선택을 해서 얻는 만족감보다 포기해야 했던 선택들이 주는 '상실의 고통'도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예 선택하지 않는 상태에 머물기로 '선택'한다.  


배달앱의 수많은 메뉴 중 어느 하나를 골랐을 때, 내가 놓쳤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존맛들이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선택을 안 하는 선택을 한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영화 하나를 골랐는데 그 영화를 보느라 놓쳤을지도 모를 수많은 띵작들이 우리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아예 아무것도 보지 않는 선택을 선택하는 것이다.



직업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면 그 선택으로 인해 다른 가능성은 모조리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끝없이 복도를 서성이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책에서는 이러한 두려움에 너무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어떤 것에 전념을 한 상태에서도 우리는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선택한 길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우리는 쉽게 어떤 대상이나 생각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선택과 전념에는 차이가 있다. 선택은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들로 인한 반대급부의 고통이 유발된다. 하지만 전념은 몰입을 경험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을 잊게 만든다.


게다가 전념할수록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이 펼쳐진다. 가령,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을 볼 때, 나 같은 사람은 어떤 그림이 무엇이 좋고, 왜 좋은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은 내가 보지 못하는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고 초심자는 알 수 없는 재미를 찾아낸다. 결국 방문을 여럿 열고 기웃대는 것보다 어느 한 방에서 오랫동안 전념할수록 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향유하게 만드는 한편 더 전념할 수 있는 힘도 얻게 되는 셈이다.


책에 담긴 이런 내용들이 3년을 견디고 버티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일이 힘들 때는 전념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포기한 수많은 선택지를 상상하기보다는 지금 하는 일에서 또 다른 묘미를 찾기 위해 나름의 애를 쓴다. 금요일밤 두서없이 이런 장황한 글을 쓰는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작가의 이전글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하는 가벼운 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