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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Nov 08. 2023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하는 가벼운 내기

한동안 우리 팀에서는 애플 워치의 만보기를 이용한 내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가령 뉴욕 비행이라고 치면 비행시간이 대략 14시간 정도 걸리는데, 비행이 끝난 뒤 만보기 숫자가 가장 높은 사람한테 커피를 사주는 거였다. 만보기 숫자가 높다는 건 그날 기내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다녔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동료들끼리 노고를 치하하는 작은 상같은 것이었다.


길고 힘든 장거리 비행 내내 가벼운 내기로 즐겁게 일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집에 오면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남편 엉덩이를 걷어차며 떼를 썼다. 나만 없어, 애플 워치! 나 빼고 다 있어, 애플 워치!!!


비록 남들처럼 애플 워치는 없지만 난 길고 힘든 비행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난 힘쓰는 일을 할 때 그 일을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기내에서 2L짜리 물통을 예닐곱 개씩 옮겨야 할 때, 승객들 캐리어를 오버헤드빈에 올릴 때, 무거운 밀카트를 끌고 다닐 때 등등 다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일한다. 몸을 쓸 때마다 이게 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근육을 강화하는 한편 지구력은 향상하고 노화는 늦추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엘렌 랭어에 따르면 이런 생각은 실제로 우리 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랭어 교수는 한 대형 호텔의 의뢰로 직원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사무직 직원들보다 객실을 관리하거나 요리하고 청소하는 등 육체노동을 하는 직원들의 비만률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랭어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활동량의 문제가 아니라 활동에 대한 '인식' 문제임을 발견했다. 즉, 육체노동자들은 매일 엄청난 양의 신체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은 전혀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원인으로 본 것이다.


랭어 교수는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고안했다. 객실을 관리하는 84명의 메이드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A그룹에는 그들이 하는 일이 운동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5분 동안의 시트 교체 - 40칼로리 소모

청소기 돌리기 - 50칼로리 소모

욕실 청소 - 60칼로리 소모


A그룹에게는 활동량에 따른 칼로리 소모 내역이 적힌 종이 카드를 나눠주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두라고 지시했다. 반면, B그룹에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고 예전처럼 똑같이 일을 하게끔 했다.


4주 후에 두 그룹의 건강 상태를 측정한 결과, A그룹 직원들은 평균적으로 혈압이 10% 감소했고 체중은 1kg 이상 감소했으며 허리 대 엉덩이 둘레 비율도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이 실험은 2007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올해의 아이디어'로 꼽혔다.


이 실험 결과를 접한 뒤부터 나도 일을 운동으로 여기자고 결심했다. 지금도 승객들 캐리어를 오버헤드빈에 올릴 때면 데드리프트를 할 때처럼 아랫배에 힘을 주고 기립근을 곧게 세운 뒤 하체의 힘을 이용해 번쩍 들어올린다. 비행기를 탔는데 자꾸 어디선가 '흡!' 혹은 '읏차!' 같은 헬스장 사운드가 들린다면, 그건 아마 내가 내는 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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