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부터 팀제가 다시 부활했다. 첫 팀비행을 마치고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는데 어, 이게 뭔가요?
코로나 이전까지는 자기소개가 다 비슷비슷했다. 안녕하세요. 김OO입니다. 2015년 입사했습니다. 훌륭한 팀장님 이하 선배님 그리고 후배님들과 함께 팀이 되어 영광입니다. 부족한 게 많지만 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
하지만 2023년 자기소개는 달랐다. 안녕하세요. 김OO입니다. 2015년 입사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MBTI는 엔프피입니다. 뭐? 엔프 뭐? 그게 끝이야? 속으로 이게 뭔가요, 하고 있는데 다른 팀원이 말을 받았다. 아 선배님 엔프피셨구나 그럴 거 같았어요. 저도 엔프피에요.
첫 만남의 다소 서먹했던 분위기가 급화기애애해졌다. 이후 자기소개는 죄다 MBTI 중심으로 이뤄졌다. 예전에 남편이 권해서 대충 했던 MBTI 검사 결과가 떠올라 급하게 카톡을 뒤졌다. 난 INTP였다 휴~. 내 차례가 되었고 행여 잘못 얘기할까 싶어 또박또박 말했다. 전 아이 엔 티 피 입니다. 내 말이 끝난 뒤 1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속으로 생각했다. 왜? 뭔데? INTP는 나쁜 거야? 아 씨....
MBTI 얘기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사무장님 일하실 때 보면 완전 대문자 T 같아요. 어 내가 그런가? 하하. 난 사실 T가 뭐고 P가 뭔지 잘 모른다. MBTI가 유행하기 전에는 외향적인 인간과 내향적인 인간을 구분하는 게 유행이었다. 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걸 즐기지 않았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내향적인 사람에 속한다. 하지만 그게 칼같이 이분되는 건 아니라서 때로는 사람들 만났을 때 즐겁고 그런 만남을 통해 힘을 얻기도 한다. 난 그냥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 같은데 당시 사람들은 내가 너무 내향적이라서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았다.
사람들이 MBTI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혈액형 분류가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O형이니까 니네 다 맞춰주는 거야. 누가 AB형 아니랄까봐 이거 완전 돌아이네. 참고로 난 O형, 남편은 AB형이다.
MBTI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을 빨리 파악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한 걸 싫어한다. 불확실한 것 중 단연 최고는 사람이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는데 딴 사람 마음은 어떻게 알 수 있나. 맞고 틀리고를 떠나 사람들은 그 불안감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MBTI가 그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이렇게 MBTI가 일상어로 쓰이는 가운데 팀내 미지의 인물이 한 명 있으니, 그게 바로 우리 팀장님이다. 팀장님 아직 MBTI 모르세요? 팀장님도 엔프피 같은데. 팀장님 이번엔 꼭 한 번 해보세요. 팀장님은 슬램덩크 북산고 감독님처럼 그저 허허 웃고 만다. 우리 팀 막내들은 기필코 팀장님 MBTI를 알아내겠다며 다음 비행을 벼르고 있다. MBTI에 빠삭할수록 오히려 누군가의 MBTI를 모른다는 게 스트레스가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INTP는 나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