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글 쓰는 거 힘들면 괜히 스트레스만 받지 말고 그냥 내려놓으라는 얘기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포기하면 편하다고 하는데 하마터면 웃을 뻔 했다. 웃으면 큰일난다. 잔소리 듣는 시간이 배로 늘어난다.
블로그를 시작하며 매일 읽고 쓰자고 결심했지만 결심은 지켜지지 않았다. 비행이 있어서, 몸이 아파서, 약속이 있어서 못 썼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래 오늘은 꼭 한 편 써보자고 다짐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그렇게 집안일이 하고 싶다. 갑자기 청소가 하고 싶고 그렇게 빨래가 하고 싶다. 베란다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물건들을 정리하거나 냉장고 정리를 하기도 한다. 물론 책상, 책장 정리는 기본이다. 한겨울에 베란다 창틀을 닦은 적도 있는데 그래도 정 할 일이 없을 때는 시댁에 안부 전화를 하기도 한다. 글 쓰는 거 빼고는 다 하는 셈이다.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부부싸움이었다. 코로나 3년 동안 집에서 꼼짝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의 말다툼도 자주 했다.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울화가 치밀고 눈물이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게 우울증인가 싶었는데 남편은 글을 쓰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다며 글쓰기를 권했다.
글을 쓴다고 그게 해결되나 싶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내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그동안 남편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짜증이 솟구칠 때가 있었는데 난 그게 항상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남편 때문이 아니었다. 나 때문이었다. 물론 남편이 잘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남편을 짜증스럽게 보는 내가 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 내면에 특별한 게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특별함도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고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서도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찾아내고 그 모습을 마뜩찮게 생각하게 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랑도 같은 맥락이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싶은 순간은 대부분 나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고 싶을 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좋고 나쁜 게 없다. 그저 세상을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보는 내가 있을 뿐이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시원하게 완샷하시고 알게 되신 것도 대충 이런 거 아닐까?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