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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Mar 08. 2024

안녕하세요, 노안입니다.


남편의 유일한 취미는 고등학교 동창과 당구를 치는 것인데 시력이 점점 나빠져서 공의 두께를 못 맞추겠다고 투덜대더니 요즘 가보르 시력 운동이라는 걸 하고 있다. 


이 시력 운동법은 홀로그래피를 발명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데니스 가보르 박사가 고안했다고 한다. 눈에는 '맹점'이란 게 있어서 한쪽 눈으로만 사물을 보면 일부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 맹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우리 뇌가 눈으로 보지 못한 부분을 추측해서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뇌가 맹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시각피질이 자극되는데 가보르 박사는 이 원리를 이용해 시력 운동법을 고안했다고 한다. 




가보르 시력 운동은 뿌옇게 보이는 여러 선분들의 모둠을 보고 쌍을 맞추는 단순한 운동이다. 우리 뇌는 뿌옇게 보이는 사물을 볼 때도 또렷하게 보이게끔 보정하려고 하는데 이 보정하는 힘을 단련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내 남편이지만 참 유별나다 유별나,라며 혀를 끌끌 찼지만 사실 나이를 먹고 있다고 실감하는 신체의 가장 큰 변화는 시력저하다. 작년 이맘때부터 기내에서 승객 좌석 번호를 확인하거나, 겔리 내에서 서비스를 준비할 때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유독 건조한 근무 환경을 탓하며 인공눈물을 넣으면 또 괜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자책을 보면 눈물이 고이고, 눈이 시려우면서 이물감도 들었다. 특히나 밤에 운전을 하면 빛 번짐이 심해져 온 신경이 곤두섰다. 남편이 매일 시력 운동을 하는 걸 봐서 그랬는지 안과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기로 했다. 의사는 여러 검사를 진행하고 이렇게 말했다. 노안입니다.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당뇨 진단을 받은 송강호 배우가 "당뇨가 감기야?"라면서 썽을 내는 장면이 있는데 순간 그 장면이 떠올랐다. 노안이라니, 이보시오 의사 양반, 내가 노안이라니...


노안 진단을 받고 남편을 따라 나도 시력 운동을 따라 하고 있다. 남편을 유별나다고 생각했던 걸 반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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