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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04. 2023

그 시절, 나와 함께 했던 플레이리스트를 꺼내며.

내 음악감상 도구의 연대기



난 옛날 노래를 좋아한다. 여기서 '옛날 노래'라고 함은 나의 초중고 시절을 함께한 음악들이다. 학창 시절엔 트로트를 즐겨 듣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이 서른 줄에 들어서서야 옛 노래를 찾는 당신의 취향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은 없지만 각종 LP판과 카세트테이프, CD들이 거실 한 켠에 있는 장 안에 빼곡히 들어있었다.



물론 매일같이 쏟아지는 최신곡들도 즐겨 듣는다. 보통은 유튜브에 있는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들을 듣는다. 듣던 음악만 자꾸 재생하는 나를 발견한 순간 시작한 음악 듣기 방식이다. 타인의 음악 취향은 어떤지 알아보고 싶어서 듣기 시작했는데 몰랐던 내 취향의 음악들을 발굴할 수 있는 노다지광이 따로 없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그때의 노래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퇴근하고 왠지 모르게 우울할 때, 집중하고 싶을 때,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감성적이고 싶을 때, 사람들과 있어도 외로움이 느껴질 때, 가족이 보고 싶을 때, 가족과 싸웠을 때 등. 사는 게 조금은 지친다고 느껴지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음악을 찾게 된달까.






2000년에서 2005년, 소리바다와 파도, 그리고 윈앰프



2000년대 극초반, 뒤통수가 커다란 컴퓨터를 많이 사용했던 시기였다. Windows의 역사를 고스란히 다 겪은 세대다.




2000년대 초반,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집에는 Windows 98이 깔려있던 뒤통수가 두꺼운 컴퓨터가 있었다.




소리바다에 원하는 음악이나 가수를 검색하면 타인이 공유한 음악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합법은 아니다.


다양한 스킨으로 변경 가능했던 윈앰프 플레이어




바탕화면에는 2000년대 초반 음악파일을 공유할 수 있었던 P2P 프로그램 「소리바다」와 음악을 재생시킬 수 있는 미디어 플레이어 「파도」와 「윈앰프」가 깔려 있었고.



6교시를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윈앰프에서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었다. 당시 윈앰프는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해서 원하는 외관으로 꾸밀 수 있어서 더욱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 때는 나이차가 나는 사촌언니와 오빠의 영향을 꽤 많이 받았다. 신화와 SES를 좋아했다. GOD도 좋아했으며 베이비복스의 노래도 꽤나 즐겨 들었다.



이 시기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동네 친구들과 교회에 출석했다. 당시 중고등부에 있었던 언니 한 명이 팝송마니아였다. 이 언니는 매주 좋은 팝송들을 내게 추천했는데 그 팝송들은 아직도 생각이 날 때마다 듣는다. 뭐라는지도 모르면서 곡의 멜로디와 가수의 목소리가 좋아서 빠져 들었다.




2006년에서 2008년, 대 MP3 시대



중학생 때 사용하던 삼성 YEPP U3 제품과 S5 제품




중학생이 되어서는 MP3가 대흥행을 했는데, 많은 이들의 목에는 아이리버의 제품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2개의 MP3를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삼성 YEPP 제품이었다. USB 일체형의 조그마한 하늘색 U3, 내장형 스피커가 있고 각종 인터넷 소설들도 담을 수 있었던 S5가 그것이다.



불법인 줄도 모르고 다운로드한 수많은 음악들을 밤새도록 MP3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소중히 담은 나만의 신곡 플레이리스트들은 등하교 시간의 절친이었다. 매일 아침 함께 등교하던 친구와 새롭게 발견한 동방신기의 숨겨진 명곡을 알려주기도 하며. 대한민국 2세대 아이돌 노래들만 주구장창 들었다.



더불어 또래들 사이에서 일본드라마 열풍이 불었다. 꽃보다 남자, 고쿠센, 노다메 칸타빌레 등 분기별로 나오던 드라마를 섭렵했는데 드라마의 영향 때문일까. 이 시기부터는 J-POP도 찾아 듣기 시작했다.




2009년에서 2011년,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전자사전과 PMP



고등학생 때 사용하던 '샤프'사의 전자사전. PMP를 쓰는 친구들도 많았다. 사진은 '코원'사의 제품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휴대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 시절 우리들의 폴더폰 또는 슬라이드폰 안에는 좋아하는 노래들과 인터넷 소설들이 조화롭게 포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휴대폰보다도 전자사전 속에 나의 지루함을 달래줄 녀석들이 한가득 있었다. 야자시간에는 영어사전으로 발음을 듣는 척하거나 다운로드한 인터넷 강의를 보는 척하며 몰래몰래 음악을 들었다지. PMP를 쓰는 짝꿍과 시선을 내리깐 채 몰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애플사의 iPhone 3gs. 둥글둥글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고교 3학년이었던 2011년. 이 무렵, 애플의 아이폰 3GS가 출시되면서 학교에서도 사용하는 친구 몇몇이 생기기 시작했다.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동시에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시작한 해였다. 매달 '알이 몇 개 남아있나?' 확인하던 문자 메시지 시대에서 애플리케이션으로 소통하는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이때부터는 하드웨어 속에 소프트웨어를 일일이 담는 에너지 소모적인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원하는 음원을 찾고자 밤새도록 온갖 사이트를 뒤졌었지만, 이제는 유튜브 뮤직이나 애플 뮤직과 같은 음원 애플리케이션에서 손쉽게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다. 엄청나게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따금씩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한정된 용량 속 정말 듣고 싶었던 노래만 찾아서 골라 넣었던 그때가. 12년간 내 하루의 기분을 책임졌던 「손때 묻은 정성 가득한 플레이리스트」들을 묵혀두기 아깝고 잊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그 시절의 우리들의 모습을 하나씩 꺼내어보며 내가 좋아했던 음악들을 기록하고 싶다.



2000년에서 2011년까지-  그 시절 나와 함께 했던 「지극히 주관적인 최애 플레이리스트」.

함께 들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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