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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07. 2023

아홉 살, 내 인생 첫 대중가수.

 SES



사이버 세상으로의 첫 발걸음



"지수야, 너 이메일 있어?"

"이메일? 그게 뭐야?"

"친구들끼리 인터넷으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어. 언니가 하나 만들어줄까?"

"응!"



9살. 어른들이 하는 것들은 다 멋있어 보이는 나이. 특히 그때의 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10살 위의 사촌언니였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사촌언니가 가르쳐줬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이들이 사용했던 포털 사이트, 라이코스 (출처 : 위키백과)



인터넷상, 생애 최초 내 신분이 생긴 사이트는 바로 「라이코스(Lycos)」. '아이디'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민 끝에 정한 나의 첫 별칭은 이름의 영어 이니셜과 생년월일을 붙인 단순한 구조였다. 내게 오는 메일은 없었지만 신기한 마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거렸다. 검은색 레브라도 레트리버가 반겨주던 라이코스와 함께 내 인터넷 생활은 시작되었다. 






아홉 살, 내게 다가온 SES



인터넷을 시작함과 동시에 이 시기의 TV 프로그램들도 즐겨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주말 저녁에는 꽤나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동거동락', '몰래카메라', '장미의 전쟁'과 같은.

그날도 어김없이 언니와 작은 텔레비전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SES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SES의 팬이었던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저기에서 누가 제일 좋아?"

"다 좋지만 … 바다라는 가수를 가장 좋아해. 노래를 엄청 잘하거든! SES의 리더인데 그 역할도 잘해."



조리 있게 말하는 언니가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SES의 팬이 되었다. 20년도 더 된 이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아마도 함께 보던 그 프로그램이 꽤나 인상 깊었다는 거겠지. 




트럭 위에서 홍보를 하고 있는 SES(출처 : Youtube TV-Poeple. 2001 SES 게릴라 콘서트)




「게릴라 콘서트」.



당대 유명한 가수들이 작은 트럭을 타고 다니며 "나 오늘 어디에서, 몇 시에 콘서트 해요!"라고 1시간 동안 홍보를 한다. 그리고 홍보한 장소에 목표한 인원이 채워지면 공연을 한다. 



당시 SES의 공연 장소는 대구의 계명대학교. 무대 위, 안대를 쓰고 있는 그녀들은 몇 명의 관객이 온 줄도 모른 채 떨리는 목소리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한다. 




안대를 풀어주세요! (출처 : Youtube TV-Poeple. 2001 SES 게릴라 콘서트)




"안대를 풀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의 긴장감. 그리고 뒤이어 오는 감동. 

관객 5,000명이 목표였던 그녀들의 게릴라 콘서트에는 11,745명이 모였다. 그녀들이 흘린 감동의 눈물에 나까지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렇게 좋아하게 된 SES의 노래 중 아직도 노래방에 가면 부르는 노래가 있다. 2001년 7월 발매된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 곡 「꿈을 모아서」. 우거진 초록 숲 속 하얀색 옷을 입은 언니들의 모습을 보면 왜 그 시절의 요정으로 불렸는지 단숨에 납득이 된다. 




앨범 Surprise 




수십 번을 들어도 이 노래 속에 담긴 청량함과 아련함은 촌스럽지 않다. 

'당신과 걸어가면 보이지 않던 미래도 더욱 밝게 우리를 비춰주기 때문에'라는 부분을 시원하게 내지르는 바다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 정말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조금은 막연하고 어둡게 느껴지는 내 앞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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