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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식 Dec 03. 2024

정치인의 승부수, 민주주의를 형해화(形骸化) 1

프랑스 정부의 의회패싱

프랑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헌법 제49조 3항을 활용해 의회 표결을 건너뛰려 하고 있다. 이 조항은 긴급 상황에서 정부가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마련된 예외적 장치다. 하지만 이번 사용은 긴급 상황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편의적 선택으로 보인다. 이는 프랑스 민주주의에 심각한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정부는 야당과의 협력 대신, 이 조항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며 의회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구를 무력화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를 형해화(形骸化)하는 행위로, 의회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협하는 결정이다. 정치적 이견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결국 민주주의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특히 이번 예산안은 긴축 재정을 표방하며 취약계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들을 담고 있다. 국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예산안이 충분한 논의와 검토 없이 강행 처리된다면, 이는 정부가 국민과 의회를 외면한 채 독주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정부가 스스로 분열을 부추기는 셈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국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의 핵심 국가로서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과 강압적인 정책 결정은 프랑스의 국제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EU 내부의 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 프랑스 정치권은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야당은 헌법적 권한을 침해당했다며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했고, 정부는 이를 힘으로 돌파하려 한다. 이런 대결 구도 속에서 국민적 요구는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정치적 승부수는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그 대가는 민주주의의 약화와 사회적 신뢰의 붕괴로 나타난다. 정부와 야당 모두 지금의 정치적 책임을 되새겨야 한다. 의회와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프랑스의 상황은 한국 정치권에도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한국 역시 과거부터 현재까지 정치적 대립과 국회 무력화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정책 논의가 타협과 합의보다는 힘겨루기와 의회 패싱으로 이어질 때,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프랑스와 같은 정치적 교착과 사회적 갈등이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한국 정치권도 되새겨야 한다. 승부수가 아닌 책임감 있는 리더십만이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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