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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 Apr 11. 2022

옛날 사진 보기

기억을 분류해보는 일

예전엔 어디 놀러 갈 때나 가족 행사가 있을 때만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정확히는 엄마아빠가 찍어주셨다. 나는 목포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지금의 원도심 쪽에 우리 집이 있었다. 목포 선창 쪽에서 구시내로 가는 길인데, 목포 5·18 성지라 불리는 동아약국에서 100미터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 집은 시내 들어가는 큰 사거리의 사진관에 필름 현상을 맡겼다. 아빠 친구가 운영했던 그곳은 내 백일 기념사진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 집 앨범의 가장 오래된 사진은 엄마 국민학교 때 같다. 아빠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사진도 있다. 그 사진들은 예전엔 서로 다른 곳에 놓여져 있었다. 그 둘이 남이었다가 부부가 되었을 때 두 사람의 과거도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부모님 결혼식과 신혼여행 사진, 가족 행사 사진, 우리 남매 태어났을 때 사진, 여행 사진, 소풍 사진, 입학식과 졸업식 사진이 주를 차지하는 사진 앨범은 우리 가족의 시간과 함께 점점 늘어나다가 삼남매가 성인이 된 이후로는 멈췄다. 내가 20살이 되던 해인 2007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필름카메라 대신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했다. 자식들이 모두 성장하자 어린 시절 추억을 남겨주려는 의무를 다 한 듯 부모님은 더 이상 사진 찍는 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때 특정 기념일에 찍는 사진이 아닌 일상을 조금 다른 무드로 찍은 사진들을 접하게 되었다.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나도 그런 사진들을 찍어보려고 했다. 디지털 사진은 인화된 형태로 앨범에 보관되는 대신 컴퓨터나 외장하드에 저장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마트폰이 디지털카메라의 기능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사진은 좀 더 아무 때나 찍는 것이 되었다. 평소 풍경을 담고 있어서 찍고, 평소랑 조금 달라서 찍고, 눈으로 잠깐 스친 이미지 중 눈에 밟힌다 싶은 것, 이쁜 것, 귀여운 것, 이상한 것, 신기한 것 다 찍는다.


스마트폰은 대체로 기기 용량이 크기 때문에 그걸로 찍은 사진을 따로 정리하진 않는다.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알림이 뜨면 사진을 지우거나 네이버 드라이브에 업로드시킨다. 스마트폰도 그렇고 클라우드 드라이브 서비스를 이용하면 재밌는 것이,    추억을 떠올려 보라며 예전 사진을  기기에 띄워준다. 그때마다 나는 이게 벌써 5 전이야? 3 전이야? 싶어서 즈음의 다른 사진도 함께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진 안에 보이는 누군가에게 연락하기도 한다. 해당 화면을 캡처해서 이게 벌써 5  이래~ 라면서 말이다. 예전에 봤던 전시 사진, 키우던 고슴도치 사진, 우리 강아지 젊었을  사진, 친구네 고양이 사진, 당시에 이쁘다고 저장해둔 어느 룩북 사진, 영화 대사,  구절을 캡처해둔 사진도 있다. 당시의 내가 떠오른다. 어떤 것을 동경하고 사랑했고, 어디에서 용기를 얻었는지 생생해진다. 내가 동경했던   나의 일부가  것들도 있다. 그럴 때면 파란색 물감을  물에 줄기를 담궈 파란색이  하얀 장미가  기분이다.


사진 앨범은 묵은 과거처럼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가구 배치를 바꾸거나 이사를 가거나 형제  누군가 결혼을   들춰볼 기회가 생긴다. 청소년기 이전의  사진을 보면 나랑 다른 사람 같다. 분명히 내가 찍혀있지만 기억나지 않는 상황도 많다. 가족들이랑 사진 앨범을 같이 보다 보면 옛날이야기를 하느라 한두 시간은 지나간다. 사진 속에 나는  울고 있는지,  계곡에서 우리 남매는 빤스만 입고 있는지,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 고모랑 이모가 같이 놀러 갔는지  이야기는 끝도 없다. 우리 남매도 귀엽고 엄마 아빠 이모 고모 모두 이쁘고 어리다. 사진 앨범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가족, 친척들 모두를 보고 있자면 왜인지 애틋하고 동지애마저 든다.  배에서 태어나 다른 삶을 살면서도 서로의 좋았던 시절을 기억  켠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관계라서 그런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깊은 일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어쩌면 순간순간에 도장을 찍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자체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옛날 사진을 볼 때면 '잃어버린 기억과 잊지 못한 기억'(1) 모두를 불러내는 느낌이다. 잃어버린 기억은 내 무의식이 되었고, 잊지 못한 기억은 여전히 내 현재에 들어와 있다.


(1)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한정현 소설가님이 자신의 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를 소개하며 썼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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