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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 Apr 21. 2022

펜팔 친구

5희

2019년, 함께 일하는 동료 추천으로 전시 공동기획 일을 맡게 되었다. 덕분에 군산이라는 도시에도 처음 가봤다. 그때 5희를 처음 만났다. 일할 때는 그렇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나는 다른 일 때문에 안동에 머물고 있었는데 워낙 먼 거리라서 군산에 자주 가지도 못했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별로 없었다. 전시 설치, 오프닝 끝나고 친해지기 시작했다. 5희는 친절하고 배려 깊었지만 적당히 건조한 사람이었다. 꼬들꼬들 기분 좋게 건조했다. 쿨한 것과 비슷한 것 같지만 좀 다르다. 일이 끝나고 안동으로 올라온 후 나는 5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의 펜팔 친구가 되어달라고! 5희는 흔쾌히 오케이 해주셨다. 그렇게 우리의 펜팔은 시작되었다.


안동의 일상은 꽤나 단조로웠다. 나는 거의 매일 세 끼 밥을 챙겨 먹고 두 시간씩 산책했다. 새로운 산책로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책로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아무튼 나는 산책을 마친 후 5희에게 편지를 썼다. 산책하면서 발견한 것들, 책을 보다가 좋았던 구절 등을 써서 보냈다. 우체국 가서 편지를 부치고 우편함으로 편지를 받는 경험은 너무나 오랜만이었고 매번 설렜다. 이후에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본가로 돌아왔을 때, 제주도에서 일했을 때에도 펜팔은 계속됐다. 5희는 인도 여행에 갔을 때도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셨다.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펜팔 때문인지 우리는 친해졌다. 나는 5희를 보러 군산에 가기도 했고 5희와 다른 도시에 놀러 가기도 했다.


5희는 사람과 세상을 통해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1호로 좋아하게 된 5희 이야기. 5희는 예전에 인권센터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회의 중에 일어났다. 어떤 가벼운 결정사항이 생겼는데 5희가 이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동료 분 중 손에 장애가 있는 분이 웃으며 그거 차별입니다~(정확한 문장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이런 맥락이었다)라고 했다. 5희는 너무 놀라서 바로 사과했다. 평소에는 자신이 강자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 같은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사람은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다가 아, 나도 그럴 수 있구나라는 걸 깨달은 계기였다고 한다.


5희는 줍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눈다.

난 누군가 버린, 아직 쓸만한 아름다운 구석이 있는 물건을 주워다 깨끗하게 닦아 사용하는 법을 5희에게 배웠다. 5희는 바닷가에 가면 깨진 조개나 돌을 줍는다. 함께 동네 들판에 가면 쑥, 미나리, 부추를 캐고 두릅을 딴다. 그걸 깨끗하게 씻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요리를 해서 나눠먹기도 한다. 돈을 들이지 않고 누군가와 새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좋은 것을 나누는 경험은 무해하게 생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내 삶에 들어왔다.


나는 5희와 대화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5희는 누군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어떤 편견이 작동할라치면 상대방에게 간결하게 질문한다. 내가 헤매고 있을 때면 방법을 알려주는  아니라  스스로  해결책을  알고 있다는  확신시켜 준다. 어쩌면 5희는 어떤 해결책이 없었을 수도 있다. 사실 있다고 말한 적도 없다. 그런  중요하지 않다. 5희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주며  선택을 믿도록 해주었다. 나는 나를  믿고 존중하게 되었고 그만큼 다른 사람들도  믿고 존중할  있는 사람이 되었다.


5희 칠순잔치 때는 내가 훌라 공연을 할 예정이다. 그때면 나도 50 중반쯤 되려나. 그보다 더 할머니가 될 때까지 5희의 펜팔 친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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