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갯벌에서 만난 친구들의 흔적
지난 주말 새만금 신공항 건설 예정지인 수라 갯벌 답사에 다녀왔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과 함께였다. 수라 갯벌은 새만금의 마지막 남은 갯벌로서 2006년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 이후 집단 폐사한 조개들이 쌓여 조개무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 황새, 흰꼬리수리, 매, 멸종위기종 2급인 금개구리, 흰발농게, 쇠검은머리쑥새, 수달, 잿빛개구리매를 포함한 36종 이상의 법정 보호 야생 동물, 31종의 보호종을 비롯한 159종 이상의 야생 조류가 서식·번식·이동·기착하는 곳이다. 해수유통을 확대한다면 갯벌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회복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새만금 신공항 사업은 멈출 기미가 없다.
답사는 군산공항 바로 옆 남수라 마을을 지나 한때는 갯벌이었던 곳에서 시작되었다. 물막이 공사 이후 마른 갯벌이 된 땅이다. 미군기지 철조망을 따라 걷다가 염생식물이 서식하는 곳에 도착했다. 첫 똥을 보았다. 갯벌같은 땅이었다. 게들이 뱉어놓은 동글동글한 흙더미도 주변에 있었다. 똥 주변에는 어떤 발자국도 있었다. 찾아보니 너구리 발자국과 닮았다. 똥을 보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다니. 찌그러진 4개의 타원형과 날카로운 발톱 모양이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은 또 어떤가. 왜 한 개만 찍혔는지 궁금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 야생동물이니까 하는 생각이 드니 신기하고 신비롭다.
거기에서 얼마 가지 않아서 또 다른 똥을 봤다. 이번엔 아까 것보다 조금 더 가늘고 검었다. 흔적을 남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똥들을 본 것은 가장 갯벌스러운 곳이었다. 군산공항 옆 땅을 지나고 조금 더 걷다 보니 EOD(폭발물 처리장)이 나왔다. 네모 반듯한 철조망 안으로 풀 관리가 잘 되어있어 말끔해 보였던 첫인상과는 달리 새만금 지역에서 구정물이 제일 처음 생긴 곳이라고 했다.
갈대군락 위로 멀리 화산도 보았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풍경이다. 화산 꼭대기에는 레이더가 세워졌다. 주변에 나무는 한그루도 없다. 베어버린 흔적만 있다. 화산은 중생대 백악기의 역암 셰일로 구성된 산으로서 작은 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 같은 매력적인 돌피부를 하고 있다. 만경강과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과거엔 섬이었다고 한다. 새만금 공사 때 물을 완전히 막지 않은 곳과 맞닿아 있다.
화산에서 하제포구로 가는 길에 화산의 돌피부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부분만 유난히 검어서 눈에 띄었다. 만경강 하구과 가까운 지역이라 샘물이 여기로 나오나 싶었다. 그 주변에서도 똥을 보았다. 좀 말라있는 똥이었다. 물을 마시러 왔다가 똥을 쌌을까? 잘게 잘린 풀이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초식동물 똥같다. 고라니 똥은 사파이어 포도같이 생겼으니 고라니 똥은 아니다. 누구 똥일까?
화산에서 하제포구 가는 길은 모래가 고왔다. 그 부근이 금개구리 서식지라고 했다. 거기에서도 똥을 보았다. 고라니 발자국도 보았다. 탄피도 보았다. 글을 쓰는 지금 내 방을 둘러보고 아파트 창 밖을 내려다보니 야생동물 똥과 발자국과 탄피가 너무나 낯설다. 나는 무슨 '체험'을 하고 와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생각하니 민망하다. 수라 갯벌의 고라니, 너구리, 금개구리, 흰발농게 등등 수많은 친구들은 곧 죽는가? 그곳에 신공항이 세워지면 모두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지 못한다. 더 이상 그곳에서는 먹을 수도 없고 똥도 못 싸고 잠도 못 잘 것이다. 살 수 없다. 살지 못한다. 너무 끔찍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