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김에 능력자 되기
일 년에 한두 번 자격증 시험을 본다. 주로 일본어, 영어 같은 언어 능력 시험이다. 꼭 붙어야지! 하는 결심으로 임하기보다는 분기별 행사를 맞이하는 마음이다. 꾸준히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지금은 이 언어를 완전히 놓진 않았다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신호에 가깝다.
이번 달 3일에도 일본어 능력시험(JLPT)을 보았다.
일본어는 내 전공 중 하나이기도 한데 쓸 일이 없으니 잊어버린다. 가끔 일본으로 놀러 갈 일이 생기면 일본어를 쓸 기회가 생기곤 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그것도 어렵게 됐다. 늪 속에 가라앉듯 잊혀가는 내 일본어 능력을 항상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마치 남일 보듯 말이다. 일본어 능력이 실종된 것 같은 위기가 고조될 때 JLPT를 치른다. 한창 공부할 때는 N1 레벨을 주로 보았는데, 작년 겨울에는 그 위기가 극에 달하여 자신감이 바닥을 친 상태로 N2 레벨 시험에 응시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잘 풀려서 놀랐다. 합격도 했다. 그 여새를 몰아 이번 달에는 N1을 치렀다.
참고: JLPT는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능력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시험이다. 수준별로 N1부터 N5까지 있는데, N1은 뉴스나 강의를 듣고 상세히 이해하며 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논리적인 글이나 추상적인 글을 읽고 구성, 내용, 흐름, 표현, 의도를 이해하는 수준이다. N2는 회화나 뉴스를 듣고 이해할 수 있으며 신문, 잡지 기사, 논지가 명쾌한 문장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분기별 행사답게 시험공부는 거의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6월 한 달 틈틈이 문제도 풀어보고 유튜브에서 강의도 찾아들었다. 시험 볼 때 N2 만큼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공부를 조금 해서 그런지 영 헤매는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어찌 됐든 N1 시험에 붙어도 나는 N2 수준으로 봐야 할 것 같다. N1이 잘 풀릴 때까지 JLPT는 계속 봐야지 싶다.
하반기에는 토익 시험을 볼 것이다. 작년에 대학원 입학 조건 때문에 처음으로 토익시험을 봤다. 커트라인 점수에 맞추면 됐어서 가볍게 치렀다. 유형을 잘 파악해서 전략적으로 치르면 어느 정도 점수는 나오는 시험 같았다. 토익은 취업 스펙용 시험으로 많이들 인식하고 있긴 하지만 고득점을 받으려면 그래도 리딩 실력이 되어야 한다는 어떤 영어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가 되었다. 해서 올 겨울에는 고득점을 목표로 한 번 더 치러볼 예정이다. 예전에 미국에 유학 다녀온 어떤 선생님이 영어실력을 가늠하는 시험은 토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는데, 토익 고득점을 받고 나면 그다음은 토플로 갈아타 볼 생각이다.
주기적인 언어 능력 시험을 치르는 것은 추천할만한 분기별 사적 행사이다.
일단 몇 시간 동안 책상에 꼼짝없이 앉아 머리를 치열하게 굴리는 그 시간 자체가 짜릿하다. 열중도가 높을수록 시험 후엔 개운하다. 마치 사우나에서 땀을 쫙 뺀 것처럼.
시험 접수를 하고 나서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들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공부는 언제나 내 할 일 목록에 올라와 있다. 우선순위에서 자주 밀리긴 하지만 말이다. 공부가 언제나 내 할 일인 것이 나는 좋다.
시험 접수를 하고 찔끔찔끔이라도 언어 공부를 하면서 이 언어를 잘하게 됐을 때 내가 어떤 걸 하게 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이 가장 신나는 부분이다. 내가 그걸 실현 중이라고 생각하면 더 신난다. 간에 기별도 안 갈 만큼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시험에 붙으면? 내가 어떤 능력자라도 된 것처럼 뿌듯하고 보람차다. 능력시험에 합격했으니 능력자가 맞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