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쐬러 나온 엄마의 일기
어느 덧 나도 마흔이 되었다.
몰랐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고 보니 다들 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너무나도 화려하고 예뻐보였다.
교수, 팀장, 리더 등 각자의 자리에서 원없이 달려가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이였고, 나에게는 지키고 싶었던 또 다른 목표가 있었고, 그러한 꽃을 피울 끈덕진 위인도 아니었다. 그런 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니 누구 원망을 하리오, 다 내가 고르고 선택한 길 인 것을.
‘아이 둘 그렇게 잘 키웠으면 됐지.’
‘난 언니가 부럽더라.’
항상 들어오던 그런저런 위로 섞인 칭찬에 어떤 것인지 모를 묵직한 감정을 삼키고, ‘좋게 봐줘서 고마워.’ 라는 말로 답한다.
그런 자리에서 섞을 수 있는 화제거리는 내 직장, 내 성취가 담긴 업이 아닌, 잘 알지도 못하는 남편의 이름난 회사 사정 이야기다.
오늘도 아이들 앞에서 잔소리가 길어져 남편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서는,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죄책감과 왠지 모를 서러움에 목이 메었다.
그런 삼키기 어려운, 풀어내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올 때면,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길어지는 것 같다. 이건 내가 성취해내야 하는 목표도, 그걸 목표로 삼아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일에서 정점을 찍는 ‘성취’가 필요한 사람이기도 했다.
원없이 공부하고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업에서 찬란한 꽃을 피워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었고, 도전 했었고,
그리고… 지금도 꿈꾸는 듯 살고 있나보다.
하룻밤 자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잠에서 아이들을 깨우는 잔소리를 해대고, 집안을 돌보는 엄마의 하루 루틴을 열심히 할 거다. 아이들에게 오늘 숙제는 다했는지, 오늘 저녁은 남편, 아이들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소소한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찾아와, 톡 건드리면 터져버릴 그 마음을 흔들어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디에서 피어날지, 어떤 향기와 빛깔을 담고 피어날지 모를 나의 꽃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쉽지 않겠지만, 야무지게 물도 마시고 햇빛도 쬐고 바람도 맞으며 언젠가는 피울 꽃봉오리를 꼭 안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안 피운다고 저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설사 활짝피는 꽃송이가 없다 할지라도,
그것도 ‘꽃’인 것을.
유치하기도 하고 철부지 같은 어느 엄마의 넋두리 일 수도 있지만, 오늘은 끝없이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녹여 흘려보내고 싶었다. 끝.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엄마야.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