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유난히 고된 하루를 보냈다. 남자는 총괄하던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자 온종일 이리저리 윗분들에게 불려다니면서 시달렸고 여자는 고객들의 잇따른 무리한 요구로 멘탈이 탈탈 털렸다. 둘 다 점심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채 일하다가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업무를 마감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만난 지 백일을 기념하는 근사한 저녁식사도 물 건너갔다. 입소문이 자자한 핫플이라 부지런을 떨며 한 달 전에 미리 예약했건만 허무하게도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둘은 잔뜩 허기져서 근처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남자는 허겁지겁 먹부림에 시동을 걸었다. 평소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그였던지라 여자가 주문한 신메뉴도 궁금하여 한 입 먹었다.
자기것도 맛있다.
"그 날, 여자는 남자와 헤어졌대."
"응??????"
한창 재미있게 듣다가 갑작스런 이별전개에 어리둥절했다.
"왜????"
"이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이별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즉시 납득하지 못한다면 언니는 아직 사랑할 때 머리보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야. 나이들어 이리저리 재는거 같아도 결국 마음이 흐르는대로 가게 되있어."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여자는 왜 남친과 헤어진거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여자가 보기에 남자는 힘들때 자기가 우선인 사람이야. 연애할 때도 이러니 결혼하면 오죽할까 싶더래. 여자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고 음식도 자기 것을 먼저 먹어보라고 하지 않았잖아. 괜히 정이 더 들기전에 배우자감이 아니다 싶으면 빨리 정리하는게 낫다고 본거지"
그제서야 나는 그럴수도 있었겠다 싶다가도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그건 남자 입장에서 여자도 마찬가지 아닌가. 평소 취향을 알고 있었다면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자기 음식을 맛보라고 권할 수도 있었을터. 남자도 위로받고 싶은 기분이었던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애인하고 밥 먹는데 니꺼내꺼가 뭐 그리 대수일까. 함께 맛있게 먹는게 중요하지. 애당초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기는 한걸까. 설사 서운했다하더라도 사람 감정이라는게 그렇게 한 순간에 무 썰듯이 정리가 되는건가.
나도 모르게 과몰입하여 요목조목 따지고 들다가 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이래서 여태 결혼을 못한건가? 영리하게 굴지 못하고 너무 진심을 담은 것이 오히려 문제였을까..'
그래도 나는 이런 내가 좋다. 다소 실속없어보여도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을 먼저 생각하고 싶다. 물론 건강한 사랑은 주거니받거니가 되어야겠지만서도 애정의 무게를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손해보지 않는 장사를 하려는 사랑은 정말 못났다. 이 나이에도 여전히 사랑을 꿈꾼다. 오로지 결혼을 목표로 한 연애는 사양하겠다. 결혼보다는 사랑이 먼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인사는 로또 당첨되듯이 하늘에서 복이 뚝 떨어지라는게 아니라 '새해에 내가 당신에게 복이 되겠습니다'란 마음을 담아 하는 거란다. 날이 좋은 날, 새해인사를 나누듯이 내 사람과 조우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