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된 기념으로 이루고 싶은 한 가지는 성경완독이었다. 모태신앙이면서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다는게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었고 마땅히 해야할 바를 평생 미루고 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앙적인 차원이 아니더라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은 한번쯤은 꼭 읽어볼만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신,구약 합쳐 일흔세권을 어느 세월에 다 읽나. 직장생활 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질 때면 슬그머니 그만둬버릴까 싶던적이 많았는데 2022년 3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두 해에 걸친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여태 살면서 용두사미로 그쳤던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심할때는 무슨 일이든 해낼 거 같은데 지속적으로 그 결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무엇보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 위대하다는 걸 터득한다. 주말마다 SNS에 올릴 그럴싸한 이벤트를 계획하곤 했었다. 희소성있는 어떤 이색적인 경험을 해야만 내 가치가 올라간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은연중에는 남들에게 환호를 받아야 멋진 인생이고 그래야 사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화려한 일회성 이벤트보다 평범한 루틴에 더욱 주목하는 편이다.
남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생활을 선호한다. 아침, 저녁으로 요가 스트레칭과 묵주 기도 5단씩 하기. 매일 EBS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정해진 분량의 영어공부를 하고 틈틈이 한자를 익히는 것. 여기에 일주일에 세 번 40분씩 실내 바이크를 타기도 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개의 요리 레시피를 실습하고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금상첨화. 물론 나의 로망이다. 지금 열거한 모든 것들을 실천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성경읽기를 완수한 저력으로 언젠가 갓생살이를 해내지 않을까 낙관해본다.
확고한 루틴은 확실한 행복을 주는 법이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바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반복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부럽다. 일도 그렇다. 여기저기 업종을 바꾸면서 잦은 이직을 하는 것보다 한 곳에 적을 두고 수십년 도를 닦듯이 장기근속 하는 분들이 더욱 대단해보인다. 하나의 분야에 통달하기까지 그들이 겪었을 희노애락을 감히 가늠해본다면 온 몸에 전율이 흐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러한 관점은 삶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돌이켜보니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극적인 장면은 잠시 잠깐이었다. 대부분은 짧은 영광을 위한 기다림의 연속이고 인고의 시간. 그런데 그게 삶의 정수이더라. 무수한 점들이 맞닿아 선이 되고 무수한 선들이 모여 면이 되는 것처럼 켜켜이 쌓이는 시간의 축적으로 탄생한 스토리가 다름 아닌 우리네 각자의 이야기다.
그 단순한 행복의 비결을 깨달은 마흔의 무렵부터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어떤 날도 유의미하니 말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우위가 없듯이 내게 주어진 날들이 모두 소중하니 중년도 기대가 되었다. 더는 지나간 청춘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미련을 떨지 않는다. 나는 오늘 하루도 해야할 바를 담담히 이어 나간다. 무채색의 날들을 즐길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