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에밀 졸라
나는 책을 읽을 때 정독 보다는 다독을 하는 편이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나중에 그 책에 대해 떠올리면 생각이 나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런 내가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은 책들이 몇 권 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이다.
목로주점은 에밀 졸라가 쓴 루공 마카르 총서의 일부이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총 20권으로 구성된 대작으로 루공 마카르라는 가문의 일대기를 여러 인물의 시각으로 서술한 작품이다.
20권이나 되는 방대한 작품이지만 우리 나라에는 순서대로 번역되어 소개되지 않고 그 중 인기있는 작품 위주로 번역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은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 '대지' 등이다.
각각의 작품은 가계도를 따라 연결되지만 별도의 독립된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다.
목로주점은 주인공인 세탁부 제르베즈가 두 명의 남편 사이에서 방황하다 알콜 중독으로 생을 달리하는 비극적 결말이다.
얼마전 서점에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신간을 살펴보다가 '제르미날'을 보게 되었다. 몇 페이지를 넘겨 보던 중 이 소설의 주인공이 '에티엔 랑티에' 라는 것을 보고 나는 문득 목로주점의 한 내용이 떠올랐다.
목로주점의 주인공인 제르베즈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철도기계공으로 일하는 아들 에티엔이 약간의 돈을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제르미날에서도 주인공인 에티엔이 카트린에게 자신의 어머니는 파리의 세탁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별개의 소설로 감상할 수 있다.
주인공인 에티엔은 철도 기계공으로 일하다 상사와 불화 끝에 뛰쳐나와 프랑스 북부 탄광 마을 몽수의 르 보뢰 탄광에 광부로 일자리를 얻는다.
에티엔은 첫날 만난 광부 마외와 그의 가족들과 친분을 쌓는다. 특히 마외의 딸 카트린과는 미묘한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 광부로 거듭난 에티엔은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광부들과 대비해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와의 갈등 속의 중심에 서게 된다.
대자본을 가진 주주들에 의해 운영되는 르 보뢰 탄광은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원가 절감을 추구하지만 그 방법으로 광부들의 임금삭감을 추진하려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광부들의 대표로 나서게 된 에티엔은 결국 파업을 주도하게 된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된 파업은 광부들에게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되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광부들에게 파업이란 파업한 날만큼 굶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에티엔을 비롯한 르 보뢰의 광부들은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인근 탄광으로 파업을 확대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탄광을 보호하려 하는 정부의 군인들과 충돌하게 된다.
광부들의 존경받는 리더인 마외가 군인이 쏜 총에 쓰러지고 마외의 자녀들도 굶주림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처음에는 무리를 지어 한 뜻으로 파업에 참여하던 광부들과 그 가족들도 굶주림 앞에서는 버틸 수 없어 하나 둘씩 이탈하게 된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주인이 된다는 인터내셔널의 구호는 공허한 외침이 되고 어느새 에티엔은 이 광산촌을 망친 배신자로 취급된다.
그러던 중 낡은 광산이 붕괴한다. 배수관이 터져 침수되는 탄광의 막장에서 에티엔은 그간 마음 속으로만 사랑해왔던 마외의 딸 카트린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에티엔의 품에서 죽음을 맞는 카트린은 '행복하다' 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다.
간신히 구조된 에티엔은 광부로 일하게 된 마외의 아내 라 마외드와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떠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러 사람이 있다. 몇 세대에 걸쳐 광부로 일한 집안의 가장인 마외.
부당한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 파업을 주도하는 에티엔.
마음 속으로만 사랑하다 죽기 직전에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카트린과 에티엔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마외의 아내인 라 마외드의 시점으로 읽었다.
남편과 함께 일곱 명의 자녀를 키우는 라 마외드의 머리에 있는 것은 바로 '생존'이라는 단어이다.
그녀는 자녀의 빵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경멸하는 식료품상 주인이나 부르조아에게도 머리를 조아린다.
하지만 그런 부당한 억압이 계속될 때 그녀는 파업의 제일 앞에 선 투쟁전사로 바뀐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은 배신자라고 죽여버리겠다고 하던 그녀는
남편과 장남 그리고 두 딸의 죽음 앞에서 다시 광부가 되어 탄광으로 들어간다.
"파업하지 않고 일하러 가는 놈들을 내가 목을 졸라버리겠다고 했잖아, 하지만 이제 내가 일하러 가니 내가 내 목을 졸라야 하나? 하지만 남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지."
라 마외드가 가진 신념은 에티엔이 알고 싶어했던 어떤 고매한 사상이나 이론이 아닌 가족의 '생존' 그 자체였다.
두 권으로 된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혹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어나 찾아봤더니 1994년에 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으로 제작된 영화가 있었다.
영화는 수작이다. 원작에 충실하고 광산촌의 어두운 풍경을 영상으로 잘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에밀 졸라의 소설 자체가 너무 등장인물이 많고 그 내면 심리와 묘사를 자세히 하고 있기 때문에 170분의 런닝 타임에 다 담아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 광산 막장에서 에티엔의 품에 죽어가는 카트린의 모습은 영화를 본 한참 뒤에도 잊혀지기 쉽지 않은 명장면이다.
에밀 졸라는 루공 마카르 총서의 여러 등장 인물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여러 어두운 면을 그려내고 있다.목로주점의 세탁부 제르베즈, 탄광의 광부 에티엔, 대지의 농부 장 마카르
지금까지 졸라의 작품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목로주점, 나나, 대지, 제르미날 총 4권을 읽었다.
아직 루공 마카르 총서의 1/5 밖에 읽지 못했다.
에밀 졸라...........시간이 참 많이 흘렀지만 참 대단한 작가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