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면서 내가 주는 사랑이 부족해서 아이의 행동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날의 감정 상태에 따라 아이에게 하는 말투나 행동이 달랐고, 피곤함이 몰려와 힘이 들 때면 더더욱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한 그 모든 것들을 아이는 그대로 흡수했던 것이다. 아이는 혼이 난 날에는 꼭 어린이집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친구를 때린다거나, 물건을 던진다거나, 울고 떼를 부리는 것이 심해져서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여러 번의 상담을 받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점점 늘어나면서부터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많은 육아서들을 참고하고, 육아에 대한 강연들을 찾아서 들었다. 나는 생활 속에서, 책을 통해서, 상담을 통해서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듣고 배웠다. 그 속에서 알게 된 하나!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원했고, 엄마의 사랑이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아이는 그 사랑을 반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늘 부족한 사랑에 목말랐던 아이가 사랑을 받고자 문제 행동들을 했던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아이들은 내면에 사랑으로 채워지길 기다리는 '감정의 그릇'(emotional tank)이 있다. 아이가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그 아이는 정상적으로 발육하지만, 그 사랑의 그릇이 비었을 때 그 아이는 그릇된 행동을 행하게 된다. 수많은 아이들의 탈선은 빈 '사랑의 그릇'(love tank)이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정신과 의사 로스 캠벨 박사는 말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랑으로 채워지길 기다리는 아이의 ‘감정의 그릇’을 다 채워주지 못한 것이다. 아이는 감정 그릇을 채우기 위해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을 보였고, 사랑받기를 갈구했다. 그러면서 위험한 행동을 일삼았고, 난폭한 행동으로 위협을 하고, 그릇된 행동을 보여 관심을 끌려했다. 이제는 안다. 엄마의 사랑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변해야 했다.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아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엄마인 내가 주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아이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 주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자주 해 주려고 노력했다. 아이와의 스킨십도 많이 시도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동안 습관이 되어버린 내 행동이나 말투가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좋은 말투로 말을 하다가도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혼내기도 했고, 아이를 안아주고 잘 토닥여주다가도 피곤하면 아이를 밀쳐내기도 했다. 엄마는 그대로인데 엄마의 가슴까지 올 만큼 커버린 아이를 안아주다 보면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가 버거 울 때도 많았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다 보니 말도 잘 알아듣고, 말도 잘하니 사랑의 표현을 하다가도 낯 간지러운 경우가 간혹 있었다. 아직 어린 3살짜리 둘째 아이에게는 잘 되는 것들이 큰 아이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모의 따뜻한 포옹과 스킨십은 아이들의 가슴을 덥혀주고 그 온기가 고스란히 세포 속에 남아, 그 아이가 자라면서 사랑이 고갈될 때마다 다시 되살아나 가슴을 덥히는 위력을 발휘한다. 사랑이 담긴 부모의 손끝에 하늘 같은 아이들의 일생이 달려 있다. 젖먹이 애기가 칭얼거리며 보챌 때, 그냥 젖만 물릴 때, 젖을 물리면서 여기저기 쓰다듬어줄 때, 젖을 물리고 쓰다듬어주며 자장가나 이야기까지 들려줄 때와는 정서적으로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육체적인 배고픔보다 정서적인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나게 마련이다. 부모의 따스한 손길은 고기반찬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바쁜 일과 속에서 한 번 더 마음을 쓰고 사랑을 주면 아이들은 정성을 쏟은 만큼 자란다. 부모는 아이에게 사랑이라는 자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기름진 땅에서 채소나 곡식이 건강하게 자라듯이 부모의 마음 밭 환경이 어떤가에 따라 아이들의 정서 상태가 달라진다. 부모 마음의 텃밭이 건강하지 않다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무슨 조건이 있겠는가? 마른논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는 농부의 마음인 농심처럼, 조건이 있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 안에서 사랑을 먹고 자란 자식은 탈선하지 않는다.>> 중부 매일신문의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는 탈선하지 않는다.”의 내용이다.
이 기사 내용만 보더라도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껴진다. 이 기사의 내용을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들이 보고 느꼈으면 한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를 바꿀 수 있는 하나의 마스터키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그 키를 갈고닦는다. ‘육아란 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꾸준히 해보자고 다짐한다. 잘 안 되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하나씩 바꿔가 보자고 오늘도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