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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소담유리 Oct 19. 2020

무조건 사랑이라 믿었던 엄마의 어리석음

첫아이를 향한 빗나간 사랑


 [부모는 조금씩 아이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양육자’에서 남들 눈에 반듯해 보이는 아이로 만들려는 ‘관리자’로 변한다. 부모가 아이의 관리자가 되려는 것은 올바르게 자라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기를 바라며, 은근히 자신을 욕 먹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모는 ‘다 너를 위해서’라며 아이를 닦달한다. 아이를 닦달하는 부모에게는 아이가 나와 동등한 인격체라는 생각 따위는 없다. 내가 낳았으니, 내가 키우니 온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EBS 60분 부모’ 성장 발달 편의 한 부분이다.     



 첫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무조건 좋은 것만 해주고 싶었다. 엄마이기에 내 아이에게는 최고의 것을 주고 싶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주겠다 다짐했었다. 또한 아이를 낳고는 남들보다 더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우뚝 솟았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이 첫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를 하고, 고가의 신생아 용품을 사고,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비싼 전집을 사주고, 읽혀주는 것이 아닐까? 내 아이가, 내가 낳은 아이가 좀 더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신생아 때는 그저 사랑만 주면 되는구나 생각했다. 아이는 하루 종일 누워서 나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크기 시작하면서 할 줄 아는 것들이 하나씩 생겨나니 내 마음에도 슬슬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다른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게 되었던 것이 말이다. 나는 그 시기 비슷한 개월 수의 다른 아이들이 실행한 모든 것들을 내 아이에게도 적용시키려 노력했다. 특히나 주위 영재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날엔 더더욱 내 아이의 모습을 신중히 관찰했고, 부족한 점들을 찾아내곤 했다. 그렇게 엄마의 예리한 눈빛은 아이를 괴롭히는 요인이 되었다. ‘남들보다 말이 빨랐으면, 남들보다 걸음마를 빨리 뗐으면... ’ 조바심 나는 마음은 “남들보다 더, 남들보다 더...”라고 하며 점점 더 큰 욕심을 부리며 아이를 다그쳤다. 나의 채찍질에 아이가 조금이라도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 더더욱 아이를 닦달했다. 때로는 무서운 사감 선생님처럼 굴었다.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강압적으로 몰아세우며 아이를 내 뜻대로 주무르려고 했다. 한시도 아이에게 눈의 떼지 않았다. 그때는 그것이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 아이기에 커서 좀 더 편하게 살았으면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특별한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나의 노력이 아이에게 더 좋은 미래를 선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다. 좀 더 엄한 엄마가 되어야 했고, 똑똑한 엄마가 되어야 했다. 힘들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아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여러 가지 육아서를 읽었다. 그러다 어떤 책을 통해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의 내용에 빗대어 보자면, 나는 아이를 나의 소유물로 다루는 경우에 속했다. 화를 유난히 잘 고, 아이를 보는 나의 기준이 너무 높았다. 또한 나의 기준이 너무 경직되어있었다. 그렇기에 아이가 물을 흘려도, 물건을 떨어뜨려도, 손가락을 입에 넣어도 화부터 냈다. 하루 종일 아이를 쫓아다니며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아니, 잘못된 행동들을 찾아내려 의심에 찬 예리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러다 보니 하루 온종일 야단치고, 혼내야 할 일들만 가득했다. 

가끔 주위의 엄마들과 만나게 되는 날에는 남들보다 뒤처져 보이는 내 아이를 보며 불안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급하게 전집을 사서 읽히고, 학습지도시켰다. 뒤떨어진 듯 보이는 아이를 끌어올리려 강도를 높여 아이를 다그치고 닦달했다.  전체적으로 나는 아이를 양육하는 태도가 독재적이고 강압적이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랑은 일방적이었다.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아이를 지적하고 비난하며, 끊임없이 비교하고 혼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또래와 싸우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아이의 편에 서주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너는 왜 그러니?” 하며 따지고 물었다. 사실 나는 그랬다. 내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혼나는 것이 싫었다. 아이 때문에 한내가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되고, 신경이 쓰였다. 또한 늘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이가 내 생각대로 행동하고 커 주길 소망했다. 이런 독재적인 생각조차도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엄마였는지...




 나는 8년의 육아 끝자락에 나의 헛된 욕심과 잘못된 생각들을 깨우쳤다.

- 무조건 좋은 것만 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욕심.

- 욕심도 사랑이라 믿었던 크나큰 착각.

- 아이를 내 뜻대로 주무르려 했던 엄마의 독재.

-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희생한다’는 바보 같은 생각.

- 첫째 아이에게 걸었던 무한한 기대감.

-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하는 첫째 아이를 다그치던 그 무모함.

-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던 빗나간 엄마의 사랑.

- 무조건 사랑이라 믿었던 엄마의 어리석음.     


 이젠 하나씩 내려놓고 변화하고자 한다.

- 좋은 것을 해주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해 주리라.

- 욕심은 내려놓고 순수한 사랑을 주리라.

- 내 뜻이 아닌 아이의 뜻을 존중해 주리라.

- 내 인생에도, 아이의 인생에도 ‘희생’이란 없다.

- 첫째 아이야! 너도 아이란다.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아도 괜찮아.

- 나의 욕심은 관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리라.

- 무조건적인 사랑보다는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참사랑을 주리라.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엄마의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 좋은 것도 아이의 행복이 뒷받침되어 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육아서를 보더라도 아이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책들을 보기를 권한다. 영재가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인성이 훌륭한 행복한 아이가 되기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육아를 하는 모든 엄마들이 일찍이 깨우치고 내려놓길 소망한다. 그래야 육아가 편해진다. 다들 아는 내용이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부분일 수 있다. 머릿속으로 생각은 하지만 실생활에서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차근차근 하나씩 변화하면 된다. 이 글은 나처럼 어리석은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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