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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by 그럼에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익숙해지기까지의 절차가 갈수록 귀찮아지는 데 비하면 거기에서 얻게 되는 신선함이나 정보는 점점 적어졌다. 서로의 머릿속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오랜 친구들끼리 앉아서 주고받는 시효 짧은 화제 또한 시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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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어쩌면 틀을 갖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일종의 삶의 매뉴얼 말이다. 아무리 복잡한 일도 틀에 집어넣으면 단순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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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은이들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리고 돈도, 능력 있는 친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 뇌와 근육에 신선한 피가 흐르고 거기에 열정과 시간까지 넉넉하므로 그들 앞에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나의 경우 그 과정을 거쳐 도달한 곳이 지금의 이 자리이다. 젊음으로 되돌아가서 그 힘든 과정을 되풀이해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보다는 이 지점에서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Claude Monet, 'Charing Cross Bridge'

우연히 들어간 창비에서 이 책을 만났다. 책의 첫 장이 아닌 무심히 펼친 곳이 이 부분이었다. 이 부분이 마음에 오래 남았던 이유는 뭔가 달랐다.


보통의 문장과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음을 동경하고, 떠난 시간을 그리워한다. 매스컴을 장식하는 걸그룹과 보이그룹, 50대여도 30대처럼 보이는 초동안 연예인, 그리고 각종 마케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젊음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인데! 모든 마케팅이 젊음을 위해서 돈을 쓰고, 또 관리하기 위해서 돈을 쓰고, 조금이라도 더 어린 느낌을 갖고자 돈을 쓴다. 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인생의 단계 단계를 단단히 밟아왔기에 계단을 굳이 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 설렘을 잃었지만 안정감을 얻은 나이!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회사 부장님이 떠오르기도 했고, 언젠가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의 건조한 목소리와 시선이 말을 건다. '넌 어때? 다시 예전의 그곳으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다시 반복할 수 있을까?'


작가는 감정의 모세혈관을 핀셋으로 집어내는 마력을 가진 사람이다. 몇 문장으로도 많은 말을 하는 사람. 그래서 작가라는 단어에 뭉클한 기대를 갖게 된다.


잘 가라, 내 청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여

- 은희경,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 유리 가가린 :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러시아어: Ю́рий Алексе́евич Гага́рин, 1934년 3월 9일 - 1968년 3월 27일)은 소비에트 연방우주비행사, 군인으로, 1961년 4월 12일에 인류로서는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비행을 하였으며, 6번이나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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