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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Dec 03. 2023

쓸 수 없는 맛집 후기

 어제는 오랜만에 맛집이 많은 을지로 여기저기를 걸어보았다.


 최근 방송에 나온 사진이 붙어있는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오후 5시면 제법 일찍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이름 좀 들어본 가게는 차가운 길에서 꼼짝없이 떨면서 기다려야 했다.


 이번엔 방문한 곳은 알면서 가 보지 않았던 식당이었다. ‘어묵'이 주 재료인 집이었다. 작은 가게 한가운데에 어묵꼬치를 다 같이 둘러앉아서 먹는 구조였다.


 신입 시절 지나가면서 봤던 집이었는데, 그때는 부장님은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들이 가득했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었다.


 그때 나는 허름한 노포보다는 산뜻한 인테리어가 된 집을 좋아했기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그때 지나가면서 보았던 중년의 아저씨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야 이 집에 들어섰다.


 밖에서 줄을 설 때도 그랬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본인의 나이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가게에 앉아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런 나이 때의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니…


 요새 노포 감성이 유행이어서 그런 걸까? 작고 어두운 실내에서 생각보다 사진이 잘 나오긴 했다. 그리고 어묵 꼬치 몇 개를 먹고, 국물을 쭉 들이키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묵전문점이라서 더 기대가 커서만은 아니었다. 그저 뜨끈한 국물이었다. 멸치나 다시마 같은 국물의 기본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 맹물에 어묵에서 흘러나왔을 미세한 어묵향, 약간의 간장이 이 국물맛의 전부였다.


 이 국물은 차가운 냉장고 어묵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온탕에 불과했다.


 벽에 써진 주인장의 글씨처럼 어묵 국물만 먹고, 안주를 시키지 않을까 봐 이렇게 뜨끈한 맹물로 만든 것일까?


 물론 시켰던 생선구이는 괜찮았다. 하지만 주 종목인 어묵은 동네 분식집보다 못했고, 저녁을 굶고 와서인지 어묵 꼬치 몇 개, 생선 몇 마리를 먹어도 배가 고팠다. 나는 소식과는 담쌓고 있었다.


 그렇게 실망스러웠던 장소의 사진은 엄청난 구력의 노포 맛집처럼 잘 나왔다. 하지만 현재 줄이 길어도 너무 긴 그 식당을 차마 맛집이라고 적을 수는 없었다. 블로그에 맛집 코너를 만들긴 했는데, 어째 유명한 것과 맛이 이렇게 상관관계가 없는지...


 블로그에 맛있는 식당만 적겠다는 나의 포부를 실현하느라, 블로그에는 소수의 맛집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맛이 없다는 후기도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이 되는 것 같아서,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모두 지우기로 했다.


 한 번은 가보았지만 두 번 가지는 않을 집, 유행에는 충실했지만 헛헛했던 맛집, 트렌드에 초연할 수는 없지만 휘둘리지 말아야 할 것임을 깨닫는다.


 내가 반성했던 삶도 남 따라하기, 남들과 비교하기였으니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트렌드를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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