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느림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Jun 04. 2024

다가올 난관

 브런치에 쓰기 좋았던 소재였던 나의 불운과 불행의 조각조각을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미리미리 예방 조치를 취하면서 다가올 불운에 대비했을까? 아니면 닥쳐올 일들에 무서워하면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며 떨고 있을까?


 서른 살 즈음, 주변에 점 보러 다니는 주변 사람들따의 조언과 이야기에 휩쓸렸던 적이 있다. 점쟁이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행운과 불운에 관해서.


 아주 먼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서 보니, 점쟁이가 해준 말 중에 그 어떤 것도 현실이 된 것은 없었다. 카리스마 있던 목소리로 모든 걸 다 아는 귀신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그런 말이었다. 오늘 오후에 길에서 만난 '도를 아십니까'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말 거는 멘트처럼.


 "겉으로는 깍쟁이 같지만 안에는 화가 많아요. 그리고 속으로는 눈물이 많아 보여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처음 본 중년의 두 여자분이 말을 걸었다. 어떻게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아냐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접근하는 그들의 인사치레였다. 


 어제 나는 인생의 또 한 소절, 어려운 구간에 진입함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기 전에도 미리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었다. 병원에 방문하고 정확한 진단을 받고도 검색해보지 않았다.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을 미리 안다고 해도 현실은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서 해볼 것이고, 따라야만 한다. 지금의 나에게 선택권은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빼고는 없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주변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막상 나에게 다가오니 막막했다. 약간의 불안은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에 다가오니 어려웠다. 남편은 너무나 담담히 받아들인다고 놀랐지만 나 역시 하루를 생각했다.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저 선택만 있을 뿐.


 아이를 갖기로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병원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오래전에 브런치 메인에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힘들었던 누군가의 마음이 나에게 다가온다니. 


 다가올 난관을 미리 안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불행이 될 수 있다. 특히 나와 같은 불안형의 인간이라면. 모르는 게 약이 될 사람이 나였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무지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의료진의 권고와 처방을 믿기로, 그저 따라가기만 하기로 했다.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호르몬이 널뛰기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마음도 널뛰기를 하고, 깊은 우울의 세계로 빠질까 봐 두렵다. 일도 해야 하고, 노령견이 된 반려견도 챙겨야 하고, 나라는 사람도 일상도 챙겨야 하는데. 무섭고 무섭다.


 정보가 없어도 이런 마음인데 정보가 많다면 아는 만큼 눈물을 흘릴까? 


 몇 년간 나에게 다가온 불운과 잘 이겨낸 행운에 대해서 미리 알지는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단어를 주기도문처럼 반복해서 되뇌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단순하게 무식하게 현실을 버텨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른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