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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Apr 07. 2024

둥둥 떠다니는 물음표에서 마침표가 될 때까지

[Prologue]

Prologue

뭉쳐있던 오감이 깨어나 말랑이던 순간으로 가득했던 125일의 뜨거운 여정, 이후 다시 떠난 두 달의 겨울 유럽 여행, 한국으로 돌아와 보이지 않던 것에 대한 새로운 시선의 생각 모음집이다. 그날 태어나 지금까지 고요히 잠자고 있던 그날의 일기를 차곡차곡 모아 꺼내보았다. 시끌벅적한 세상 밖으로 나온 필자의 생각이 이 책을 우연히 펼쳐보게 된 독자와 만나보길 바라며.


# 둥둥 떠다니는 물음표에서 마침표가 될 때까지

작년, 이맘때쯤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갖고 긴 여정을 떠났다. 요즘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하며 살고 싶은지 모르는 탓에 꿈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선생님이라는 꿈을 학창 시절 내내 꿈꿔온 필자는 꿈이 없다는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다, 어렸을 적부터 교육대학교라는 곳에 입학하기까지 줄곧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꿈을 좇아오다 보니, 임용고시의 관문에 서있었고 수년간 간절히 바라온 시험에 다행히도 합격하였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답답한 공무원 사회에 들어가기 전, 일 년의 대기 시간이 주어졌다.


대기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내야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 수없이 고민했다. 남들처럼 기간제 교사를 하며 돈을 벌어야 할지, 그토록 원하던 세계여행을 가야 할지 답이 정해진 고민을 꽤 길게 하였다. 당시 로망에 가까웠던 마음속 꿈은 낯선 나라를 탐험하는 자유로운 여행자가 되는 것이었다. 꿈을 사방팔방 말하고 다녔던 덕분인지, 어느새 말한 대로 이루어졌다.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이라는 책에서 김영하 작가는 ‘어떤 나라나 도시를 마음에 두었다 한동안 잊어버린다. 그러다 문득 어떤 계기로 다시 그곳이 떠오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그곳에 가 있다. 그런 여행은 마치 예정된 운명의 실현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하였다. ‘예정된 운명의 실현’, 내게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닌 삶을 일컫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가고 싶은 곳으로 뚜벅뚜벅 향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있었다.


그동안 여러 대륙, 바다, 나라, 도시, 지역, 집, 방을 옮겨 다녔다. 여러 인종, 문화, 환경을 만나고 맛보고 느꼈다. 험악하고 냉정하고 차가워진 사회 속에서 다행히도 가는 곳마다 따뜻함을 잃지 않고 있는 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길 위에서 혼자 또는 사람들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끝없이 넓어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과 이뤄낸 현실, 공무원이라는 미래에 대한 확실성 덕분에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가벼움은 방방곡곡 다닐 때마다 무거워졌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여러 실타래로 엉켜져 갔다. 새로운 나라를 몸으로 느낄 때마다,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수두룩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직업적인 꿈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소망을 품었다. 예를 들면, 나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 이왕이면 좋아하고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수영’과 관련된 일을 하며 바다와 가까이 지내고 싶다. 나는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싶다. 역설적으로, 모국어인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으로서의 꿈을 갖고 있다. 나는 책과 글쓰기, 조용한 공간을 좋아해서 아담하고 층고가 높고 기다란 창으로 둘러싸인 책방을 만들고 싶다. 단골 독자들이 드나드는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 최근에는 책을 써서 출판까지 하고 싶다는 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지금, 작가의 꿈을 이루고 싶어 둥둥 떠다니는 메모장 속을 휘저으며 글 속에 나를 녹여내는 중이다.


아무튼, 소중한 꿈들 덕분에 삶에서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확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졌다. 한동안, 자신감이 없어 꿈을 망설였다. 어딘가 늘 붕 떠 있는 거 같았다. 왜 그렇게 꿈을 주저했을까 반추해 보니 이렇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꿈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대답으로는 혼란과 무거움의 물음표로 되돌아왔다. 단단한 물음표로. 앞으로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도록 좋아하는 것을 늘 곁에 두면 어느새 예정된 운명의 실현 속 주인공이 되어 마침표를 찍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기대해 본다.


사실, 이제까지 불확실함으로 인한 무거움만 말했지만, 확실한 것도 분명히 있다. 먼저, 나는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다른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는 세계 여행하며 경험한 모든 것이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축적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얻는 게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아낌없이 격려와 칭찬,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함 속 단단히 서있는 나의 꿈들이다. 앞으로 불투명한 미래에 사로잡혀 허둥대며 곁을 외면하지 말고, 주변의 확실함을 바라보며 불투명한 물음표 속으로 ‘풍덩 ’해야겠다. 이제 잘 헤엄쳐 나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푸웅덩!’


Spain, Nerja 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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