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 [People & Love]
따뜻함 백 스푼, 오손도손
오늘도 길 위에서 사랑을 받았다.
햇빛들이 잔잔한 호수로 풍덩하여 수영하는 호수가 참 아름다운 봄날 ‘프랑스 안시(Annecy)’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김치찌개가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 사람이 아무리 적응의 동물이라 하여도, 뼛속부터 한식이 깃들여진 사람은 적응을 못할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다. 앞으로는 어딜 가든 ‘한알육수’와 비상용 ‘햇반’을 꼭 챙겨 다니자고 결심했다. 당시, 안시 시내 안에는 한식당이 하나도 없었던 탓에(현재는 여행자들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시내에 '오손도손 2호점'이 생겼다.) 김치찌개를 포기하고, 아시아 마트에서 구한 햇반으로 만족하려 했다. 쌀로 허기진 위를 달래려 노력했다. 다음 여행지는 한식당이 많은 '포르투갈'이었기에 그전까지만 참아보자 싶었지만, 나의 마음은 나약했다. 결국 발길은 안시의 유일한 한식당 ‘오손도손’으로 향했다.
안시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날 종착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큰 도로를 지나, 큼지막한 대형 유통단지들을 지났다. ‘과연 이곳으로 가는 게 맞을까?’라고 수없이 구글 지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의심은 되지만 지도를 믿고 싶은 마음(믿어야만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으로 뚜벅뚜벅 걷던 중, ‘어서 오세요’ 한국말이 적힌 입구를 발견하였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을 때, 테라스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계시던 식당 주인 분들이 보였다. 동시에 유쾌하고 밝은 인사가 오고 갔다.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언니들과 짧은 대화를 통해, 사람의 긍정적인 기운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배웠다. 한 사람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몇 번의 말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전해질 수 있더라. 언니들과의 만남은 다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기운을 가득 충전해 주었다. 든든한 밥을 먹기도 전에.
잘 찾아온 한식당, 우연치 못한 밝은 주인 분들과의 만남을 통한 반가움을 잠시 가라앉힌 채, 프랑스인 손님들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김치찌개를 그 어느 때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며 정신없이 먹었다. 나도 언니들처럼 기분 좋은 분위기, 느낌을 전하는, 삶의 활력소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반찬을 곁들이며.
김치찌개를 다 먹고, 후식을 먹을 즈음에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받았다. “우리 곧 점심 먹을 건데, 잠깐 주변 좀 구경하다가 다시 와서 같이 수육 먹어요~” 깜짝 놀랐다. 그동안 많이 다녀간 한식당은 정말 그리웠던 음식만 먹고 돈을 내고 인사하며 나오는 전형적인 식당이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식당의 모습이다. 맞다, 보편적인 식당이라면 다 그럴 것이다. 평소처럼, 여러 손님 중 한 손님으로 지나칠 수 있던 식당 주인과 손님의 관계에서,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된 식당 언니들과 여행자로서 나의 관계로 이어진 그 상황이 낯설지만, 따뜻했다. ‘정말 내가 끼어도 되는 자리일까?’ 싶은 고민도 하기 전, 기쁜 마음으로 얼떨결에 수육 식사에 동참하였다. 마저 점심 장사를 하시는 동안, 그날따라 유독 햇살이 더 아름답게 빛나는 안시의 그림 속을 이곳저곳 걸어 다녔다. 강한 햇살에 바람은 많이 불지 않아 더울 수 있던 날씨였지만, 바람을 만들어주며 지나가던 자전거 무리 덕분에 시원했다. 정처 없이 걷느라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영화에서만 봐왔던 오두막집이 달린 개성 있는 주택들과 잘 갖춰진 마당, 나를 압도하며 끌어안아 주는 사방에 펼쳐진 산과 하늘 덕분에 즐겁게 산책하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오손도손 식구들과 거리낌 없이 불어와 영어, 한국어가 뒤섞인 언어를 나누고.
그들의 점심에 초대받아 믿기지 않는 수육을 먹고,
중동에서 유명한 솜사탕 같은 것이 얹어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시트콤 같은 그들의 웃음 넘치는 삶을 관찰카메라가 된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에 잠시 녹아들었다.
평상시처럼 영업이 끝나면 장을 보러 나가시던 N과 C는 그날도 장을 보러 나섰다.
항상 다니던 같은 길을 지나지 않고, 더 예쁜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빙 돌다 가주시던 N, C님.
거리낌 없이 마음을 활짝 열어주신 것에 더불어 처음 보는 여행자에게 더 좋은 기억, 추억을 선물해 주시는 모습에 기존의 난 한없이 작아지고, 꿈과 배움은 더욱 커졌다.
이날, 또 하나의 새로운 꿈이 생겼다.
‘마음이 안시 호수처럼 넓은 사람, 바라만 봐도 편안함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따스한 사랑을 호의로 건네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MERCI INFINIMENT”
-26.04.2023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