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마샤가 한국에 온다면 내가 받은 이상으로 잘해주고 싶어, 꼭!
서프라이즈 달인 가족들
내 친구의 나라는 어디인지 궁금해서 시작한 이번 모험, 정말 마음에 들었다. 세르비아에 이어서 사람만을 믿고 떠난 두 번째 나라인 우크라이나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우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장을 보고, M네 집으로 향했다. 단 반나절 만에 입국심사, M 가족의 환영, 오데사 대형마트에서 장보기,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이 왔다 갔다던 유명한 초콜릿 집에 들러 서로의 선물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모든 일이 순식간에 척척 흘러갔다. 희한하게도, 이곳은 낯선 곳인데 낯설지 않았다.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있는 게 익숙해져 있었고, 한국말보다 영어와 각종 다양한 언어가 섞인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우크라이나에서 보낸 첫 날도 마치 그동안 알고 지내던 동네인 듯, 잠깐 멀리 떨어져 살았던 친척들을 만난 듯, M 가족들과 함께 이질감없이 잘 어울려 다닐 수 있었다.
더 이상 숙소에서 홀로 맞이하는 흰색 침대 시트와 적적한 공기가 아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방 안으로 들어선 순간 여러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을 거듭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날 기다렸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제대로 가구들이 놓여 있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성급 호텔 버금가는 나를 위한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귀여운 스펀지밥 이불, 그 위에 살포시 얹어져 있는 인형들과 바로 씻을 수 있도록 준비해 준 수건, 그리고 괜찮은지 계속해서 나의 표정을 살피며 물어봐주는 가족들이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저 우크라이나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선물이었는데 이들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 선물이 두 배, 세 배, 아니 배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짐을 잠깐 내려놓자마자 M은 눈을 감아보라고 했고, 눈을 감았다 뜨니 내 눈앞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실감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아 이틀 뒤면 2022년이구나.' 이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지겹도록 봐서 별로 감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카페나, 길거리에 놓인 트리가 아닌 가정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꾸민 아기자기한 트리는 보고 또 봐도 좋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M도 모르게 놓여있던 M을 위한 가족들의 작은 선물들이 놓여있었다. 가족들의 서프라이즈 성공을 위해 못 본 척하겠다는 M의 모습과 성인이 된 후에도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왔던 것처럼 연말에 트리 밑에 선물을 준비해 준 M의 부모님의 따뜻한 모습도 내겐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일까, M도 부모님 못지않게 서프라이즈 달인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먹는 김치찌개, 흰 쌀 밥
언제 한 번 여행하던 중 M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어떤 음식이 제일 그리워?" 난 당연히 주저 없이 흰 쌀 밥, 밥이랑 찌개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넘어갔었다. 정신없이 여행을 하던 중이라 그 깊은 뜻을 몰라봤다. 알고 보니, M은 우크라이나에 도착했을 때 내가 그리워했던 음식을 차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M이 준비해 준 김치찌개와 흰 쌀 밥을 보고 깨달았다. "헐! 야! 너 뭘 이런 걸 준비했어!" 그때 물어봤던 질문이 그냥 스몰톡을 주고받는 것 이상으로 날 위한 따뜻한 음식을 차려주려고 했다는 M의 빅픽쳐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변에 한인 식당도 없을뿐더러, 구하기 어려웠을 재료들이었음에도 M은 가끔씩 집 주변에 서는 장에서 김치를 판다며, 거기서 김치를 사서 레시피대로 따라 해 봤다며 수줍게 말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M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숟가락과 밥그릇을 들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감탄 한 번 하고, 그토록 그리웠던 찌개 한 숟가락을 먹었는데 세상에 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그 익숙한 맛이 그대로 묻어져 있었다. 날 위해 찌개를 준비해준 것에 대한 감탄에 이어, 처음 한 거 맞는지 계속해서 의심이 될 정도로 맛있었던 찌개의 맛에 연신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며 그동안 허기졌던 찌개가 들어갈 위가 따뜻한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테이다. 나에게 계속 무언가를 건네준 가족들 덕분에 위가 쉼 없이 바쁘게 일하게 되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을 소화해내야 했지만 요리를 정말 잘하시는 M의 어머님과 그 손을 물려받은 M덕분에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따뜻한 온기를 계속해서 먹을 수 있었다. 이번에 처음 만난 사이라는 사실이 거짓으로 들릴 정도로 우린 어느새 한 가족처럼 서로에게 벽 없이 한없이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나중에, 마샤가 한국에 온다면 내가 받은 이상으로 잘해주고 싶어, 꼭. 그리고 다음에 다시 우크라이나에 올 때는 한국의 음식과 간식, 기념품을 많이 챙겨 와서 드리고 싶어,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