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덥다. 만사가 귀찮고 몸이 축축 처진다. 논문 자료를 보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노트북을 덮고 거실로 나와보니 집이 엉망진창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어지르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낙이 없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것일까. 나의 사명은 집안일인가!!!
그러다 시계를 보니 첫째가 집에 올 시간이 한참 지나있다. 바둑학원에서 하원 문자는 와 있는데... 학원에 연락을 해봐야 하나?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엄마 저 OO인데요. 저 집 앞 놀이터에서 잠깐 놀다가도 되나요?"
첫째가 누군가의 휴대폰을 빌려 전화를 한 모양이다. 이 땡볕에 놀이터에서 놀겠다니. 마지못해 '알았어, 10분만 놀다 와'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0분이 지나도 첫째가 집에 오질 않는다. 둘째 하원할 시간이 돼서 일단 유치원으로 향했다. 둘째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만치에서 첫째의 모습이 보인다. 세상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있다. 운동화와 책가방까지 축축하다. 놀이터에서 바닥분수가 가동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참을 수가 없었단다.
첫째는 물에 퐁당이고, 둘째는 땀이 뻘뻘인 상태. 집도 햇빛에 달궈져서 더웠다. 오자마자 아이 둘을 욕실로 집어넣었다. 후딱 씻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다.
씻고 나온 아이들에게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던져주고 에어컨을 켰다. 냉장고에 사둔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다. 옷을 갈아입은 아이들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에어컨 앞에 쪼르르 달려갔다. 첫째가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며 말했다.
"아, 진짜 살맛 난다!"
카프카는 말했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라고. 너무 거창한 즐거움을 누리려고, 대단한 삶을 살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더운 여름엔 에어컨 앞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큰 기쁨이고, '엄마 진짜 최고다' 하는 아이들 앞에서 으쓱거리는 게 내 인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