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떡 Jan 31. 2023

점심시간에 숨겨진 상대성 이론

점심시간은 왜 항상 빠르게 지나갈까?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속도가 달랐다. 회의 시간, 그리고 퇴근 시간 전까지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시계를 흘끔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반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시간도 있었다. 바로 점심시간.


개인적으로 하루 세끼 중 점심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아침은 일어나랴, 출근 준비하랴, 아이들 챙기랴 정신이 없다. 저녁은 하루의 몸에 고단함이 묻어있다. 게다가 저녁에 과식하면 다음 날이 힘들다. 그에 비해 점심은 최상의 상태다. 몸도 마음도 한결 여유롭고 가볍다.


회사 동료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니.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점심시간이 두 시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가 그렇게 되면 우리 퇴근이 늦어질 거라고 했다. 곧바로 다른 동료가 ‘어차피 야근할 텐데, 점심시간이 한 시간 긴 게 더 낫지 않겠어?’라고 응수했다. 조삼모사 같지만 그래도 각자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방안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누군가 한 마디 던졌다.  


“점심시간이 늘어난다 해도, 점심시간은 항상 짧게 느껴질걸?”


정말 그러려나? 그래도 나는 긴 점심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나에게 두 시간의 점심시간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어쨌든 모두가 점심시간이 짧다는 사실엔 동의했다.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다들 그 짧은 점심시간을 알차게 썼다. 점심시간에 은행, 병원, 관공서를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퇴근하면 문을 닫는 곳들이 많았으니까. 덕분에 그런 곳들은 점심시간에 인산인해였다. 사람이 많은 날이면 볼 일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회사 근처 운동센터에 등록했다.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고 있을 때였다. 운동이 필요한데, 운동할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워킹맘이었기에 퇴근 후에도 내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결심한 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계획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운동하러 가는 날이면 점심시간을 앞두고 우울해졌다. 운동도 체력도 중요했지만, 나에겐 점심시간의 휴식이 더 간절했던 모양이다.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운동을 할 때 심히 헉헉거렸다. 결국, 점심 운동을 그만두었다. 점심시간이 좀 길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운동도, 밥도 다 챙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 자연스레 휴직 후 기다렸던 것 중 하나가 점심시간이었다. 드디어 꿈만 같던 두 시간의 점심시간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점심시간을 지정할 수도 있었고, 업무에 쫓기지 않고 점심시간을 누릴 수도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에 달려가지 않아도 되었다. 먹기 싫은 메뉴를 억지로 먹을 필요도 없었다. 먹고 싶은 메뉴를 고민하고,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넣어 요리했다. 빨리 먹고 일어날 필요도 없었다.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점심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갔다. 계획대로라면 분명 밥 먹고 운동도 할 수 있고, 밥 먹고 은행도 다녀올 수 있고, 밥 먹고 책도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왜 밥 먹고, 그릇을 치우고,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나면 두 시간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거지?


나는 머리를 굴려 가며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뭐 먹을지 고민하는데 시간을 너무 오래 썼나? 요리하는데 너무 시간이 걸렸나? 아니면 휴대폰을 보며 먹느라 늦었나?’ 시간을 줄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이전처럼 조급한 점심시간이 되고 있었다.


동료의 말이 맞았다. 점심시간이 늘어나도, 점심시간은 항상 짧은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휴직하면 점심시간이 길어서 좋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짧더라고. 그랬더니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던 초등생 아이도 반색하며 끼어들었다.


“엄마도 그래? 나도 점심시간이 제일 짧아. 그런데 점심시간이 제일 신나!”


시간의 속도는 나이의 제곱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남은 시간이 아쉬울 터인데, 그럴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간다는 말이다. 점심시간도 그렇다. 점심시간은 많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속도가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빨리 흘러가는 점심시간을 아쉬워하고 서두르기보다 아이처럼 반겨주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점심시간은 매력적이다. 점심시간을 만나기 전부터 설렌다. 점심을 먹고 여유를 누리는 시간은 행복하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면 힘이 난다. 만나기 전, 만나서, 그리고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달콤한 시간이다.


시간은 절대적인 존재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은 상대적이기도 하다. 짧지만 소중한 점심시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도 좋고, 가벼운 운동을 해도 좋고, 처리해야 할 일을 해도 좋다. 대신 빨리 흘러가는 시간에 아쉬워하기보다, 그 순간을 즐기시기를.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분야 기사로도 발행되었습니다.

https://omn.kr/21oxr


매거진의 이전글 밥 잘 챙겨 먹어, 아픈 나를 위한 밥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