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떡 Oct 15. 2024

나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병원을 다녀왔다. 주변에는 그냥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대었는데, 실은 몇 개월간 질병으로 인해 약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한 질병은 다름 아닌 '공황장애'다.


5월에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다녀오고, 나는 그날 이후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탔다가 숨쉬기가 힘들어지거나, 길을 걷다가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쓰러질 것 같다는 등 비슷한 증상이 반복되었다.


내과, 이비인후과 등을 방문해도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정신과였다. 그때만 해도 설마? 하는 생각이었다. 기왕 가는 거 확실하게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 오자 싶어서 대학병원에 진료를 예약했다. 큰 병원에서라면 별 거 아니라고 넘어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공황이 확실합니다"


처음 진단을 받고 들었던 생각은 '내가 왜?'였다. 나는 연예인들처럼 주목받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최근에 엄청나게 큰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시기를 살고 있다고 여겼는데 나에게 왜 공황이 찾아왔을까.


원인 파악과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녀야 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진료가 장기간 이어질 테니 먼 병원보다는 집 근처 병원으로 다니는 것을 권하셨다. 괜찮은 병원이다 싶으면, 일단 빨리 초진 예약을 해두라고 덧붙이면서. 요즘 정신과에 워낙 사람이 많아서 초진 예약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겨우 한 달 뒤에야 집 근처 병원에서 첫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혹시나 공황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내 기대와는 달리, 새로운 병원에서도 바로 공황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회사 일이 주된 원인인 것 싶다가도, 가족이 주된 원인인 것 같았으며, 또 학업이 원인일 수도 있었다. 모든 일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혹은 원인 없이 발생한 걸 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약을 먹게 되었다.


약을 먹으면 바로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약에 적응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나는 약의 여러 부작용을 경험했다. 어느 날은 하루종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고, 어느 날은 밥 한 술 먹기 버거울 정도로 속이 콱 막혔다. 공황증상과 약 부작용이 함께 오니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가족과 소수의 지인 외에는 내 상태를 말하지 않았으므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고 애썼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정말 다행히도, 한 달쯤 지나니 약효가 나타났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극도의 불안감이 수그러드니 예전의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지하철도 탈 수 있었고,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었다. 매일 두 번씩 먹는 약도 아침에 한 번씩만 챙겨 먹으면 되었다.


벌써 약을 먹은 지 5개월 정도가 되어 간다. 그래서 지금은 다 나았으냐고 물어본다면? 음, 그랬다면 이 포스팅의 제목이 '공황장애가 찾아왔다'가 아니라 '공황장애를 겪고 나서'가 되었겠지? 나의 공황장애는 현재 진행형이다. 두 달 전만 해도 이젠 다 나은 건가? 싶어서 약을 줄여볼까 했었는데 다시 증상이 나타나서 약 복용량을 유지키로 했다.


공황장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가도,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싶기도 하다. 솔직히는 후자의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주변에도 밝히지 않았다. 누군가 괜찮냐고 물을 때, 안 괜찮은데 '괜찮아'라고 대답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안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것도 싫고. 그러면 정말 더 괜찮지 않을까 봐.


그래도 공황장애를 겪으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고, 얼마나 감사했던 일인지를 깨닫고 있다. 그렇다고 차마 좋은 경험이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나의 공황장애는 조만간 완치될 수도 있고,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고, 혹은 재발할 수도 있겠지. 어느 경우에든 내가 그 과정들을 잘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여담


병원 진료를 받으며 내가 물어본 질문 중 하나는 '이렇게 공황장애 판정받고 정신과 치료받으면 불이익이 없나요?'였다. 두 의사 선생님들 모두 다 내 현재 직업을 물어보셨고, '혹시 국회의원, 장관 같은 거 하실 예정은 없죠?'라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그럴 생각도, 그럴 가능성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왜요? 그런 경우엔 치료받으면 안 되나요?"


본인들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런 경우에는 정신질환 이력을 조회하게 되고, 간혹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다. 흠, 그래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 그래도 공황장애가 범법 행위도 아니고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닌데, 왜 불이익이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혹시 정치하면서 증상이 심해지거나 재발할까 봐 걱정이 되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19 시대, 달라진 이사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