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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도로 Apr 16. 2020

부끄러운 허기

미역국을 비우고 난 빈 그릇을 보며 

뮌헨에서의 마지막 시절의 겨울. 임신이 되었다. 설마설마하면서 두줄을 확인하는 순간 "으악! 이게 뭐야!!" 라며 소리를 질렀다 내 생에 처음 겪어보는 일에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이제 슬슬 아이를 가져야 하나 하는 타이밍에 바로 찾아온 아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 줄 몰랐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만 말을 하자면 나는 그 처음 찾아왔던 아이와 바이바이를 해야 했다. 다만 '계류유산' 으로 헤어지는 바람에 아이를 내 몸에서 분리해야 하는 수술을 해야 했었다. 




임신기간동안 정말 지독한 입덧에 시달렸고 약 두달 사이에 3~4kg가 빠졌었다. 체력은 체력대로 바닥이었고 마음은 마음대로 지옥이었다. 수술을 받을 기운이 없어서 전날 억지로 쌀국수 한그릇을 먹었다. 수술 당일. 침대에 누워있는데 마취과 선생님이 오셨다. 마취를 하면서 말을 걸었다. "이제부터 마취를 할꺼야. 근데 너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 뮌헨에선 몇년 살았어" "4년?" "아 그렇구나 독일어 잘 하네" "아냐 잘 못해. 이것만 해. 어려워" "4년살이만큼은 하잖아 난 한국도 못가봤어 난 한국말 하나도 못해"  




그리고 나서 눈을 뜨니 병실이었다. 남편이 옆에 있길래 왜 수술을 안하고 병실로 왔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벌써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옮긴 상태라는 거다. 몇 시간동안 휴식을 취하고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원 소속을 마치고 병원밖으로 나오는데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독일의 겨울바람이구나. 정말 차갑다고 느끼는 순간 임신 때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허기를 느꼈다. 바람이 차서 그랬을까. 따뜻한 음식. 특히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나서 곧 수치감이 들었다. 아이를 보냈는데 배가 고프다니. 뭔가 먹고싶다니.  이 허기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퇴원하고 묵게 된 후배의 숙소에서 내 상황을 알게된 사람들이 미역국을 갔다놓았고 나는 그 미역국을 어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할 지 몰랐다. 사실 내심 반가웠다. 하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멍하게 미역국을 바라보고 있는 날 보며 남편과 후배는 그래도 한술 뜨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잡고 숟가락을 잡았다.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뭉근하고도 미끌거리는 미역을 씹었다. 막상 먹으니 맛이 느껴졌다. 고소했다. 따뜻했다. 허겁지겁 먹고 나서 덩그러니 비워진 그릇을 쳐다봤다. 이상하게 빈 그릇을 보니 더 슬퍼졌다. 마음은 심연으로 가라 앉는데 몸은 미역국을 먹고 떠 오르는 기분이었다. 수술 직후보다 살 만하다고 느꼈다. 바다의 생기를 미역국이 전해준 걸까? 그 덕인지 나는 그대로 누워 남편과 후배에게 한 번 웃어줄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후. 지금의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첫 아이를 낳은 첫 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말 너무나 쉽게 아이를 낳았고 나의 상태도 좋았고 운이 좋은 건지 나쁜건지 그 날 병원에 특실 밖에 남아있지 않아 특실에서 묵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온 몸과 신경이 살아있던 그 밤. 나는 잠을 들지 못했다. 보통 아이를 낳은 첫날은 잠을 잘 수가 없기도 하지만. 나는 아기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그렇게 그 아이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밤에 그렇게도 울었다. 마음에 품는다는 게 이런걸까. 왜 한번도 보지 못한 아이가 이토록 보고 싶을까.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봤드면 얼마나 좋았을까. 숨소리를 들어봤으면. 울음소리를 들어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케테 콜비츠.  엄마와 아이 


한번만 만져봤으면, 한번만 안아봤으면 좋겠다는 세월호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던 세월호 아빠 한 분께 SNS로 덧글을 남긴 적도 있었다 "제 이야기가 아무런 위로가 안되겠지만. OO이가  살지 못하는 시간을 나는 살게 되었으니 완벽하진 않지만 OO이를 기억하면서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16일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도 이토록 보고 싶은데 세월호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갑자기 하루 아침에 자식을 황망하게 잃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찢어질텐데 지금도 온갖 악이 담긴 말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삶을 버텨야 한다. 여섯번 째, 그들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감히 조금이나마 가지고 오기를 기도한다. 미안하다. 절대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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