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자의 외로움 극복기
최근에 이유 모를 외로움에 시달렸다. 왜 이유를 모른다고 제한을 두었냐면, 이전에 겪어온 외로움은 원인 파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되는 편이었다. 외로움이 찾아온 이유는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정신 상태와 나를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조차 나를 제대로 살펴보기엔 미더운 구석이 많았지만 그런 나를 하염없이 사랑해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내 안에 부족한 사랑의 의무를 정체 모를 타인에게 전가하곤 했다. 그 외로움이 타인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알량한 생각에 갇혔을 땐 시선이 외부에 향해있었고 그렇게 에너지의 방향이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타인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을 해줄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미더운 나를 꾹 참고 바라보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나에게 해주려고 점차 변해왔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이유 외에 '도파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롭기도 했다. 이건 정확히 표현하자면 외로움으로 표방된 나의 도파민 중독이 아닐까 싶긴 하다. '설레임'이라는 감정으로 일상 속 허전한 무언가가 채워지기를 바랬달까. 고된 일상을 보내고 나에게 무언가 보상이나 적절한 휴식을 주어야 하는데 그게 무엇일지 잘 모르니 '도파민'이라는 자극 추구로 이어졌던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이유와 상황이 나름대로 분석되었던 과거의 외로움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왜 외롭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며 이유를 파헤쳐보자.
1. 지금 나는 건강하지 못한 정신 상태인가?
: 그렇지 않다. 아침과 밤에 일기를 쓰고 있고, 스마트폰 스크린 타임도 근 1달간 4-5시간 정도이며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주체적으로 독서하며 독서 노트도 작성하고 있고, 독서 모임에서 책과 삶에 대해 얘기하며 지내고 있다. 음식 또한 자극적인 음식을 지양하고 있으며 보는 유튜브 컨텐츠도 대개 정적인 것이고 요리하는 영상이 대부분이다.
2. 도파민이 부족한 상태인가?
: 그렇지 않다. 매일 접하는 기사와 책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충분히 도파민을 전달받고 있다. 스스로 더 강한 도파민에 취하는 상황이 생기면 벗어나거나 미리 절제해서 기분도 높낮이가 없도록 하고 있다. 이전보다 도파민을 얻는 체험이 더 건강해졌고 일상 속에 잔잔히 묻어있다.
3. 심심하거나 일상이 지루한가?
: 그렇지 않다. 해야할 공부와 하고 싶은 것의 목록이 수두룩 하다. 당장 하고 싶은 프로젝트도 잔뜩 있고 무엇부터 실행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나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내가 생각한 바로는 기존에 외로움을 겪던 여러 루트에 다 해당하지 않았기에 정말이지 어제 겪은 외로움이 어이가 없고 납득이 되지 않아 억울할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해소했을 때 어떤 모습이 그려지는지 떠올려 보기로 했다. 내가 바라는 해소 방식에서 지금 내가 결핍된 것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알게 모르게 이슬아 작가님의 수필집을 읽으며 그의 일상 속 묻어있는 연인과의 생활을 부러워했음을 떠올렸다.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함께 토론하고 얘기하되, 함께 밥을 먹고 걱정하고 산책을 하는 일상의 잔잔한 다정함. 그렇다면 함께 사는 모습이 아닌 데이트 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어떠한가? 음, 솔직히 생각만해도 기가 빨리긴 하더라. 어디를 가야할지 생각하고 가서 외부의 자극에 대응해야 하는 나를 생각하니 경험하지도 않았지만 지친 기분이었다.
여러 생각을 통해 내린 결론은 내가 바라는 외로움의 해소 형태는 함께 느슨하게 다정함을 공유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굳이 연인이 아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내가 알게 모르게 혼자 사는 일상이 외로웠음을 깨달았다. 조금 적적하긴 했지만 고집부리듯이 혼자가 편하다고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래도 타지 생활이 적응되었어도 외로운 시기가 찾아오지 않을 순 없지.
그렇다면 앞으로도 또 찾아올 수 있는 이 외로움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이전에 하던 것처럼 회피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우선 덮어두지 말고 잠시 본가에 내려가보거나 혼자 지내는 공간에 더 신경을 써볼 것. 그리고 나와 더 많이 대화하고 느슨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구를 여러 개 만들어둘 것. 어떤 해소 방법이든 한 쪽으로 몰리지 않고, 느슨하게 여러 곳에 퍼져있도록 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뚝 - 끊겨버리더라도 큰 타격을 받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