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예박물관
따뜻한 봄날이라고 하기엔 제법 더웠던 4월 어느 주말, 서울공예박물관을 찾았다. 지금은 기획전시 준비 중이기도 하고 근처에 일정을 마치고 겸사겸사 더위도 피할 겸 방문하게 됐다. 그리고 매번 지나가기만 해 봤지 실제로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란 걸 알아차렸을 때, 게으름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또 깨닫는다.
2021년 11월, (구) 풍문여고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인 서울공예박물관이 개관했다. 개관 전부터 서울공예박물관 프로젝트는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안동별궁 옛터인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자 근대건축의 산물인 풍문여고 건물, 조선의 장인 '경공장(京工匠)'들이 존재했던 종로구의 중심 지역으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다섯 개 동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안내동을 제외하고 모두 재생 건축물이다. 각 건물은 기존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는 많이 달라졌고, 각 건물은 서로 연결되어 가로지른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담장과 연결된 조경이다. 본래 부지 전체를 두고 있는 담장은 유구를 보존하면서 활용되었고, 전체적인 경사로 인한 단차는 부드러운 조경이 인상적이다.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개방감은 커지고 열린 공간이 되면서 감고당길 쪽으로 시원하게 진입이 수월하며, 이웃한 송현동 부지와 연결된다. 삼면이 트여 열린 박물관 마당은 광장의 기능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곳을 가로질러 출퇴근을 하고, 점심시간에 휴식을 즐기고, 저녁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광장에 서서 보이는 하얀색 건물은 화려한 입면에 시선이 이끌린다. 입면에 튀어나온 부분은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창호에 알루미늄을 접어 덧붙이고 튀어나오게 해 입체적인 느낌이 난다. 하나하나 손으로 접어 만드는 공예품처럼 창호를 공예적 표현으로 입면에 나타냈다. 창호 하나하나 PC패널에 어울리게 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을까.
안내동은 이곳의 유일한 신축 건물이다. 그래서일까. 전면이 통유리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높은 층고를 활용한 새로운 물결이 들어와 힘이 실린 느낌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강연 및 프로그램, 아트 샵 등이 구성되어 환기 역할을 함과 동시에 외부의 1츠 부분이 열리면서 생긴 반쪽의 외부공간에서는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한다.
박물관의 본관은 장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기존 입면이 가진 분위기를 간직한 채, 깔끔하게 단정된 건물은 샌드 느낌의 베이지 대리석이 한 판의 크기로 이어졌고, 줄눈을 최소화하여 재료의 질감이 더욱 드러난다.
세 개층으로 이루어진 본관은 1층은 로비와 도서관, 2층은 상설전시실, 3층은 기획전시실로 계획되어 있다. 본관 로비는 방풍실을 통해 박물관 전체를 관통하는 전이공간의 역할을 한다. 화려한 요소 없이 하얀색 벽과 천장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층고가 높지 않지만 넓은 개방감을 선사한다. 날이 좋은 날이면 네모난 창으로 빛이 스며들고 전시를 보러, 휴식을 즐기러 온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 창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감고당길과 월대의 풍경, 뒷마당의 은행나무는 외부와 연결되어 인상 깊은 장면을 남기는데 앞마당과 뒷마당이 하나로 연결되는 동선이었으면 어땠을까? 했다. 공간의 생김새를 최대한 보존하려 했을 것이란 잠깐의 의심 사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풍경이 공간에 스며드는 광경을 지켜보며 사색에 빠져본다.
상설전시실은 공예의 역사를 감상할 수 있는 예술 및 공예품을 전시한다. 좁은 복도형 전시 구성을 따라 외부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뒤뜰의 풍경은 전통 공예품을 감상하는데 더 극적인 효과를 전달한다.
전시공간은 전시품 자체가 예술적이기에 특별한 디자인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전시 동선과 전시 콘텐츠에 이질감이 들지 않는 공간 구성과 연출이 필요하다. 서울공예박물관의 전시실 중 몇 곳은 낮은 층고와 복도형 전시실로 공간 활용과 조명 연출이 어려워 자칫 전시의 방향 자체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공간의 생김새로 공예품을 기획하는데 어려워 보였다. 아마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매 순간 엄청난 고난에 빠질지 모른다.
서울 공예 박물관의 랜드마크 요소를 꼽으라면 당연히 이 건물을 떠올리지 않을까? (구) 풍문여고 과학관이었던 어린이 박물관은 원형의 형태로 박스 형태로 이루어진 대지 특성을 고려했을 때, 그 모양이 꽤나 못생겨 보였겠다. 리모델링으로 외관을 테라코타 루버로 감싸고 덕분에 색채가 짙은 붉은 컬러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 가까이서 보면 끝에서 하나로 이어져 흐르는 원형의 테라코타의 모습은 하나의 거대한 공예품을 보는 듯하다.
현대 공예관(전시 2동)은 위치상 존재감이 떨어진다. 대지의 가장 안쪽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건물은 골조를 유지한 채, 전벽돌로 마감된 외관으로 은행나무 배경으로 차분한 인상을 심어준다. 관리동과 이어지는 경사로는 계단으로 연결되며 개방감을 선사하는데 은행나무 아래 쉼터에 앉아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내려앉아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
광장 앞쪽으로 열린 월대는 뒤쪽으로 들어오면서 막혀 있는데, 은행나무 쉼터는 대지보다 레벨이 높아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담장 너머의 풍경도 답답하지 않게 바라볼 수 있다. 오히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월대의 흔적이 뒷마당을 감싸 안정감이 들기도 한다.
완연한 봄을 맞이하는 5월이 되면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현대 장신구를 소개하는 전시가 개최된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개관 이후, 많은 방문객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나뉘는 장이자 외연의 확장을 계속해서 모색하고 있다. 모두의 집이 공예품인 것처럼 이곳 역시 과거와 현재의 풍경을 잇는 모두의 박물관이자 공간에 담길 공예를 기대하게 하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한다.
- 영업시간
월 정기휴무(매주 월요일 휴관)
화 - 일 10:00 - 18:00
- 방문객 인근 주차장 이용
글, 사진 | yoonzak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