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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15. 2023

잠깐 멈추어 본다.

-갈등의 순간 알아차리기

잠시 멈추어 글을 쓰는 일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헤매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글을 쓸 때나마 나를 잠시라도 붙들어 앉혀놓고 차분히 의식한다. 깨어있을 수 있다. 내가 뭘 했는지 뭘 느꼈는지 뭐가 좋고 싫었는지를 뒤적여보고 마음에 걸리는 일의 본모습을 확실히 알아본다.


의식하지 못할 때 세상의 검증되지 않은 시선과 기준들에 휩쓸려 들어가 죄책감과 질투심, 열등감, 남들에 대한 판단으로 휘청거린다. 뭐가 맞는 것이고 어떤 것이 헛소리인지 알아채고 멈추지 않으면 너무나도 순식간에 그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자동적으로 순식간에 떠오르는 비난하고 판단하는 마음, 불편한 마음과 생각들에 나의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그런 생각들은 너무도 강력해서 나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그 생각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명명백백 남들 탓이고 잘못이다. 남에 대한 비난과 불평의 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무의식에 휘둘리며 사는 나를 잠깐씩이라도 멈춰 세우려 한다. 마음속으로 정신없이 남을 비난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다른 사람을 그 자신으로 존재하도록 놔두자’, ‘나도 남의 기준이나 판단에 맞추려 하지 말고 꿋꿋이 살아가자’라는 말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너무도 쉬워 보이는 이 말들을 자주 잊는다.


이 말들은 나에게 큰 도움이 돼서 여러 번 적어놓기도 하고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재빨리 떠올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이나 아이들이 맘에 들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그들도 그럴 것이다. 그때 저 말을 떠올린다. ‘또 무의식에 휘둘릴 뻔했구나.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고 있고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되는 저 말이나 행동이 정말 잘못된 걸까?’라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가족들과의 갈등이 많이 사라졌다. 아직도 식구들을 가르치고 싶고 불만을 터트릴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이 없지는 않지만 그때 제동을 걸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겼다. 제동을 걸고 숨을 몇 번 쉬고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또 나의 기준으로 잔소리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기하게 가만히 놔두었을 때 아이들이 더 빨리 제자리를 찾아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이 거슬릴 때는 그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때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이 마음이 힘들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평상시와 다르게 나를 찌르는 말을 하거나 과도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자랑하는 말을 하는 거였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할 때 그렇게 힘든 상대를 오히려 비난하고 미워했다. 그럴수록 그 사람은 더 구렁텅이에 빠지고 헤어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 같았다. 평상시에 그러지 않던 사람이 안 좋은 모습을 보일 때는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고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말은 쉽지만 사실 그 시간은 힘들었다. 그래도 되도록 참고 기다려준다면 내가 다 알지 못했던 그 마음을 잘 극복한 후 전보다 더 다정하고 부드럽고 말랑한 사람으로 돌아온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친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훈계하고 심지어 비난한다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고 그 관계는 영영 되돌릴 수 없게 될 것이다. 말로 쓰면 이토록 쉬운 일이 현실에서는 참 어렵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은 대체로 대하기 힘들다.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가득 세우고 있어서 별 말도 아닌 거에 크게 반응해서 오해가 생기기 쉽다.


지금도 자주 이런 일을 잊기 때문에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브런치에 이렇게 써 놓으면 마음에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좋은 말은 각인이 되고 써서 버리고 싶은 안 좋은 일은 잘 떠나보낼 수 있다.


혼자서 일기에 썼을 때와는 다르게 더 효과가 있다. 글쓰기는 삶을 잘 살아나가도록 도와준다. 좋은 열매와 사랑의 마음뿐 아니라 마음에 쌓이는 버리고 싶은 것들 모두를 다 받아주는 일이 글쓰기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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