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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25. 2023

나를 살리는 말들

-맑은 물 붓기

말이 문제다. 항상 말이 문제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후회하고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다 내 입에서 나온 주제 넘는 말들, 방어하는 말들 때문이었다. 내가 상처받는 이유도 다 남들이 생각 없이 던진 말들 때문이었다.


내면아이를 치유하는데 큰 기여를 한 존 브래드쇼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성인이 될 때까지 25000시간의 부모의 말 타입을 내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늘 해야 할 과제에 대해 재촉하는 말, 안전에 대한 염려에서 나온 불안을 조장하는 말들, 내 감정을 이기지 못해 내뱉은 나쁜 말들을 도대체 몇 시간이나 아이들이 들었을까?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뒤돌아보면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거라는 걸 알 거라는 생각에 했던 의무를 지우는 말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심어주는 말들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어떤 내면의 목소리를 갖게 될지는 뻔한 일이다.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늘 강의를 하고 있어서 내 말을 점검할 기회가 있었으니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위안했지만 이론보다는 이미 내 안에 심어진 내면의 목소리의 힘이 더 컸던 거 같다.


안전과 청결에 대한 강박증이 있고 불안감이 높았던 엄마에게 나도 좋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몸이 약하기 때문에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세상은 무섭고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경계 태세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평생 들었다. 그게 너무 지긋지긋하고 싫어서 나름대로 반항도 해보고 속으로는 내 마음대로 해야지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내면에도 같은 불안과 강박이 심어지게 되었다.


난 아마 25000시간이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들었기 때문에 5만 시간쯤 되리라. 그 내면의 불안과 부정적인 마음을 씻어내기 위해 좋은 말을 폭포수처럼 부어주기로 결심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마음 챙김이나 수용을 기반으로 한 인지행동치료 심리학책들과 여러 영성도서들을 읽기 시작한 것은 도저히 살 수 없을 만큼 불안감과 부정적 감정이 커져가면서부터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걱정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때마다 새로운 걱정거리들이 계속 이어졌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낼까? 성적은 잘 받을까? 대학을 잘 갈 수 있을까? 아이가 아프거나 몸이 안 좋기라도 하면 비상식적인 걱정이 일어나곤 했다.


젊을 때는 잘 타고 다니던 비행기가 나이가 들수록 무서워졌다. 이래서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마음에 불안감이 가득 찰 때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 챙김이나 수용에 대한 책들을 계속 찾아다녔다. 이런 책들을 읽고서야 마음을 안정시키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불안과 평생 쌓여온 부정적인 말들을 씻어버리기 위해 긍정적인 말들을 쏟아부었다.


지금도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읽었던 책이나 비슷한 내용의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줄 친 부분을 다시 읽고 마음에 새기기 위해 노력한다.


김혜령 작가의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라는 책에서 뇌가 유연하고 순응적이기 때문에 경험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다는 “신경가소성”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서 나의 뇌에 이미 난 길이 아닌 새로운 사고의 길을 내려고 노력한다.


‘의식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연습하면 그쪽으로 신경회로가 새롭게 형성되고 더 반복하다 보면 그 회로가 강해진다. 그러면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그 방향으로 행동하게 됩니다.’라는 내용이 마음에 들어왔다.  


이제는 불안이 올라올 때 예전의 그 습관적인 불안의 길에서 잠깐 멈출 줄 알게 됐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그 길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간다.


세상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말들,

내 생각이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말들을 되새긴다.

이 불안감은 먼 옛날 맹수와 피할 수 없던 자연재해에 대한 원시적인 반응이라고 나에게 부드럽게 이야기해 준다.

다 잘될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 일이 결과적으로 다 나쁜 일도 아닐 것이다.

수없이 많은 좋은 말들을 나에게 해준다.


그동안 외부에서 듣지 못한 안심되는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들을 스스로 해주고 있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인터넷 뉴스와 정보들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학사경고를 받고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일 때, 군대에 갈 때, 술 마시고 늦게 다닐 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비행기에서도 불안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내가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불안과 부정적인 마음에 끝없이 끌려 다니면 삶은 지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닮아 불안감이 높은 아이들을 이제라도 놔주기 위해 좋은 말만 하려 노력한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고 막연한 20대를 보내고 있는 아이에게 불안감을 덧붙여줘서는 안 된다. 그 어느 시대보다 취업이 어렵고 비싼 집값에 결혼도 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그런 말을 더 보탠 들 무슨 도움이 될까?


불안감에서 도피하기 위해 다른 것에 몰두하는 모습들이 남편에게는 한심하게 보이는 거 같다. 군대에 가는 아이에게 영어라도 확실히 해서 와라 누구를 소개해 줄 테니 좋은 말이라도 들어봐라 등등 자꾸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의도로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일지 잘 모르는 거 같다.


남편은 본인 젊었을 때 그런 도움과 충고를 듣지 못한 게 아쉬워서 좋은 걸 준다는 생각에 하는 말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아이들이 지원이 부족하고 몰라서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원과 도움이 부족할 때 스스로 절실히 해내는 힘도 생긴다.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그러길 바라는 건 맞지 않다.


남편과 내가 살던 세상과 아이들의 세상은 다르다. 아이도 누구보다 요즘 세상이 어떤지 뭘 해야 하는지 아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서 회피하고 있는 중이다.


옆에서 자꾸 조바심 내고 불안감을 조성할 때 스스로 움직이는 시간은 자꾸 뒤로 미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때가 될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려줘야 한다. 수용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은 덕분에 그런 여유를 배우게 됐다.  


그동안 내가 뱉은 부담스럽고 부정적인 말들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려면 매일매일 예쁜 사랑의 말들만 하고 지금은 그 부정적 말들이 맑은 물로 씻겨 내려가길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은 부모가 내뱉은 부정적 말의 양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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