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 될 거라고 믿는 일이 허황된 낙관주의일까? 그렇다면 걱정하는 일은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벌어질지 모르는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느라 생각의 감옥에 갇히기보다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하면 된다. 걱정하는 일이 나 자신의 일이라면 행동으로 실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그 일이 자식이나 타인의 문제라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정확히 그 일을 해주면 된다. 아니라면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식문제가 특히 그렇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걱정이 이어진다. 어릴 때의 걱정과 커가면서 생기는 걱정은 그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될 뿐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그 걱정은 형태만 달라질 뿐 끝날 줄 모른다. .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그렇게 걱정하고 남들처럼 인생의 숙제를 때맞춰 해내지 못한다고 안달해 봤자 뭐가 해결될까? 아이와의 관계만 나빠질 뿐이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 외에 뭐가 있을까?
어릴 때도 부모노릇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다 컸다고 쉬워지지 않는다. 부모의 역할을 매번 새로 배우고 달리 대해야 한다는 걸 배운다.
나는 요즘 ‘아이가 다 잘 될 텐데 화내거나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무슨 주문처럼 외우고 다닌다. 아이에 대한 걱정이 불현듯 솟아날 때 주문처럼 저 문장을 이야기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저 이야기는 사이토 히토리라는 일본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낸다는 기업의 회장이 쓴 <사이코 히토리의 1%의 부자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본 이야기다. 이 저자의 책 제목만 보고 재테크 책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인생의 지혜를 소박하고 쉬운 말로 알려주는 좋은 내용이 많아서 여러 권 읽었다. 부자 되는 법은 못 배웠지만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지혜를 여러 가지 배웠다.
그 책에서 저자는 “회사에서 제게 꾸중을 듣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어차피 다 잘 될 테니 화를 낼 필요가 없지요. 일을 망칠까 봐 불안해하는 사람이나 실수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매일 화를 냅니다. 화를 내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참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이 말이 너무 단순하면서도 나에게 와닿았다. 그렇게 아이들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화낼 일이 없다.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안해지고 현실을 모르고 안일하게 있는 거 같은 아이들에게 화가 나는 거였다. 뭔가 잘못하는 거 같고 내 맘에 안 들어도 그것대로 이유가 있고 아이가 실패도 하면서 본인의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다 잘 될 거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살 거고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금방 환해진다.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면 걱정은 저만치 물러난다.
요즘 그 분야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 줄 아느냐는 말들, 또는 이미 그 분야는 차고 넘쳐서 지금 뛰어들기에는 늦었다는 소리들은 듣지 않기로 했다. 유투버가 차고 넘쳐도 여전히 새롭게 성공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고 문과를 나와도 원하는 일을 하며 잘 사는 젊은이들도 많다. 주변 사람들 말에 인터넷의 말들에 휩쓸려 미리 포기하고 걱정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들 입시과정을 봐도 그렇다. 큰 애가 논술로 대학에 간다고 했을 때 학교와 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서도 그건 로또에 가깝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엄마인 나는 무한히 흔들렸다. 아이에게 그 불안감을 전가하며 이것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저것도 해보자며 엄마인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오히려 아이가 뚝심 있게 논술전형만을 목표로 힘을 분산하지 않고 준비해서 원하는 바를 이뤘다.
둘째도 2학년 때까지는 열심히 내신도 챙기고 이것저것 대회도 나가며 준비를 했는데도 더 이상 내신이 오르지 않자 정시로 가야겠다고 하면서 내신에서 손을 떼더니 가장 중요한 고3 때 생전 받아보지 못한 점수를 받아왔다. 담임 선생님도 걱정을 하셨고 정시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수능 날 삐끗해서 몇 개 더 틀리면 큰일이다, 특히 문과에서는 한 문제 차이로 대학 레벨이 순식간에 갈린다 등등 무수한 말들이 들렸다.
그러나 아이는 그 모든 말들이 무색하게 수능에서 한 과목에서만 몇 개를 틀리고 다 맞아왔다. 그리고 본인 말대로 정시로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아이들은 자신을 잘 알고 있었고 엄마인 나만 아이보다는 주변에서 하는 말들에 갈대처럼 흔들리며 아이들에게 불안을 주입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대학입시의 문을 넘었더니 이제는 또 둘 다 문과라고 남편은 불안 해 한다. 둘째가 수학을 잘하니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해서 이과로 대학을 가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남편의 불안은 이해한다. 나 보고는 치열한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 이상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한다. 남편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고 본인이 나이가 들어가니 불안감이 커지는 건 이해한다.
세상에서 떠도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걱정하며 아이에게 불안감을 전달해서 안전한 길을 강요하는 게 옳은 일일까?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아이 일에서만은 조금 낙관적으로 여유 있게 봐주는 게 건강한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알아서 잘할 거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게 지금의 부모역할임을 알고 기다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늘구멍 같은 길도 원하며 꾸준히 한발 한발 다가간다면 갈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알려주고 있는데도 부모는 끝없이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부모가 할 일은 미리 기를 꺾지만 않으면 된다. 안전한 길만 걸은 비겁하고 겁쟁이인 내가 뭘 안다고 아이를 또 그와 같은 길로 내 몰겠는가?
원하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가면 될 거라고 믿고 응원해 주는 일 밖에는 해줄 일이 없다. 다 큰 아이에게 부모가 해 줄 일은 그거면 충분하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아이들에 대해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이렇게 진심으로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오래 걸리고 실수도 많이 했다. 그래도 올해 들어서는 정말 많이 받아들여져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