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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Mar 09. 2024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까?

며칠 전 친한 후배들과 만나 해방촌 산책도 하고 구복만두에서 점심을 먹고 숙대입구의 새로 생긴 카페에 갔다. 나이가 다들 50이 넘고 그동안 좋다는 식당과 카페를 많이 다녀서인지 카페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어떻고 커피맛은 어떻다, 티라미수는 수제가 맞는 거 같다는 둥 이런저런 감상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우리가 웃겨서 “우리 정말 까다로운 아줌마들이다. 옛날 엄마들이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았는지 알겠어”라고 자아비판을 살짝 했다.

구복만두와 숙대앞 카페의 맛있었던 커피


카페나 식당에 들어서면 딱 견적이 나온다. 대충 음식 맛이 어떨지 운영자의 마인드가 어떨지가 느낌적으로 다가온다. 카페의 분위기나 디저트의 외양만 봐도 수제로 정성껏 만들었는지 어디선가 납품받아온 것인지 그냥 공산품인지가 보인다. 그런 다년간의 경험에서 나온 느낌과 감에 의해 선택했을 때 거의 틀림이 없었다.


이렇게 다녀보고 먹어보고 사본 후 알게 된 나름대로의 지혜를 주변에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때가 많다. 특히 성인이 되었어도 생활면에서는 많이 부족해 보이는 자식들에게 그렇다.


아이들이 좋다고 하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보면 음식이 자극적이고 간만 센 경우가 많았다. 외양은 화려하고 사진 찍기에 좋은지 모르겠지만 주인 나름의 확고한 취향에서 나온 깊이 있는 느낌이나 편안함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나이에 따른 취향 차이일 수도 있고 나이 대에 따라 좋다고 느끼는 감각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그걸 틀렸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젊은이들은 지금 본인들에게 좋은 것들을 찾아다니고 경험하면 된다. 내가 많이 가봐서 아는데, 많이 먹어봐서 아는데 하면서 꼰대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몸도 힘들고 소화력도 떨어지는 우리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나 장소가 이제 막 부모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힘이 넘치는 아이들과 맞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집에서 거의 밥을 먹지 않았던 거 같다. 늘 된장찌개와 나물 위주의 반찬이 주를 이루는 밥상이 정말 싫었다. 바깥 음식에 길들여질수록 점점 더 한 끼도 먹기 싫었다. 내가 어렸을 때인 70~80년대에는 지금처럼 외식이나 배달이 흔치 않아서 대학에 들어가서 먹게 된 다양한 바깥 음식들이 정말 신세계였다.


대학 입학 후 학교 앞에 KFC가 처음 생겼고, 타코벨, 웬디스 같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 막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웬디스 햄버거와 샌드위치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신촌에 서브웨이도 그때 처음 생겨서 자주 사 먹었다. 지금도 내 친구들이 너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그런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었다고 놀린다.

추억의 웬디스 상표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도 될 시간인데도 미리 나와 혼자 햄버거를 사 먹기도 했다.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하던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던 거 같다. “몸에도 나쁜 음식을 왜 돈을 쓰고 사 먹니?”라는 말. 요즘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치킨, 햄버거는 너무 익숙한 음식이라 마라탕이나 심지어는 육회같이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음식들을 사 먹거나 집에 밥과 반찬이 가득한데도 시켜 먹는다.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와 지금 아이들의 행태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금 나는 늙고 힘들어서 그런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지만 젊을 때는 먹어도 크게 탈이 나지는 않았다. 몸에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젊어서 소화 잘 되는 한때 먹고 싶은 음식들을 실컷 먹어보는 것도 좋다. 30대가 되고 몸이 전 같지 않아 지면 저절로 줄이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은 먹는 거든 뭐든 할 만큼 해야 그만두는 거 같다. 큰 애가 대학원 다니면서 영상대학원이라는 과 특성 때문인지 그렇게 술을 마시고 늦게 다녔다. 아무리 젊다고 해도 그런 생활을 2년 넘게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지는 걸 느꼈는지 지금은 주중에는 매일 수영을 다니고 술도 거의 먹지 않는다. 그 당시 잔소리 안 하고 참느라 사리가 나올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래선지 아이와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지금 내 나이의 경험치와 생각으로 보는 세상과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다를 것이다. 그걸 미리 이야기해 주고 시행착오를 막아주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돈이 아까운 음식도 먹어보고 물건도 많이 사봐야 좋은 식당과 물건을 고르는 눈이 생기듯 단순히 낭비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실수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알아나가는 것이 삶이다. 그걸 다 막아주겠다고 잔소리하고 못하게 잡아둬서는 안 된다. 젊을 때 낭비도 해보고 실수도 해보면서 말로 일일이 전달할 수 없는 세상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그걸 막지 말아야겠다.


이제 27살이 된 딸을 보면 그만큼 경험치가 쌓였다고 21살짜리 동생에게 이런저런 잔소리하는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해서 ‘내가 전에 다 너한테 했던 이야기였잖아’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때는 귀 막고 안 듣더니 스스로 알게 되었다고 어린 동생에게 너도 잔소리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아는 게 많아지면서 자꾸 가르치고 싶고 잔소리하고 싶어 진다. 옛날에 시부모님이나 부모님이 왜 그렇게 잔소리가 심하셨는지 이해는 간다. 젊었을 때의 나는 그 소리가 너무도 싫어서 사실 다 흘러들었다. 싫다는 감정만 깊게 남아있다. 결론은 다 필요 없는 행동이라는 거다.


노인의 생각과 몸 상태가 젊은이와는 다르기에 적용될 수 없다. 자식을 내 테두리에 가두어 놓고 미리 세운 계획대로 따라가게 하는 삶이 실패는 없겠지만 과연 그만큼 충만감을 느낄 수 있을까? 위태로워 보이고 부족해 보여도 젊은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력으로 경험해 보는 것만이 진짜 삶이다.


실패와 실수는 젊음의 특권이다. 지나고 나면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본 삶이 후회가 남지 않고 인생이 가득 차게 느껴질 거 같다. 두려움 속에서 보장되는 길로만 다닌 인생에는 지금의 나처럼 안락한 공허감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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