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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May 11. 2024

화려한 5월의 혼자 여행

- 수원 행궁동

요즘 날씨가 참 좋다. 아니 좋다는 표현으로 부족할 만큼 화려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여러 일들로 피곤했지만 이렇게 화창한 날 집에 있을 수 없어 어디를 가볼까 검색을 했다. 오늘은 서울을 떠나 조금 멀리 가보자고 결심했다. 수원 행궁동!


오래된 집들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 그래 오늘이다. 가보자 결심하고 나섰다. 비록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집에서 1시간 반 가까이 걸리는 노선이었지만 뭐 상관없다.


난 버스나 지하철에서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멀리 가는 길도 즐겁다. 음악에 집중하다 보면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는 게 서운할 때도 있다.


시내버스 한번, 광역버스를 두 번 타고 ‘수원전통문화관’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5분 거리에 행리단 길이 시작된다.

정류장앞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꽤 널찍한 길이 벌써부터 맘에 들었다. 입구부터 예쁜 카페와 소품점, 식당들이 많았다. 내가 오늘 행궁동에 온 이유기도한 오래된 예쁜 집들이 정말 많았다. 주요 도로와 그 사이사이에 작은 골목길들로 들어가면 오래된 운치 있는 집들이 많았다.

 

5월이라 예쁜 꽃들과 연두색 나뭇잎을 가득 매달고 있는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담장 너머로 보이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세탁소까지 예뻤다. 세탁소 주인같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세탁소 앞 나무에 물도 주고 나뭇잎도 따며 돌보고 계셨다.

세탁소마저 예뻤다.


파란 대문의 집, 항아리가 조르르 늘어서있는 집 모두 잘 관리되고 있어 보였다. 아파트단지에서는 볼 수 없는 전봇대와 전깃줄마저 그림이 되는 풍경이었다.

전봇대와 전기줄마저 풍경이 되는 곳

일단 오느라 오래 걸렸고 12시가 거의 돼가고 있어 사람들이 몰리기 전 얼른 혼밥을 해야겠기에 식당을 찾았다. 맛있어 보이는 중국집, 텐동집, 솥밥집 들어가 보고 싶은 식당도 참 많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제비곳간이라는 한식집에 들어갔다. 기력이 좀 달려서 수육을 먹기로 했다. 항정수육에 쌈밥과 오징어 무 무침이 예쁘게 데코레이션 된 한 쟁반을 받아 들었다. 보기에도 예쁜데 맛도 좋았다. 항정수육이 생각보다 덜 느끼하고 부드러워서 꿀떡꿀떡 넘어갔다.

제비곳간 식당



밥을 먹고 한적한 카페를 찾아 나섰다. 에버닌이라는 좋은 밀가루를 쓰는 빵으로도 유명한 카페에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낮은 천장의 아늑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아메리카노와 계피롤을 사서 한 시간 정도 메모도 하며 맛있는 빵과 커피를 음미할 수 있었다.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카페였다. 잠봉뵈르나 샌드위치도 먹어보고 싶었다.

에버린 카페



이제 밥과 커피도 다 먹었으니 본격적인 탐험을 시작할 시간이다. 부른 배를 소화시킬 겸 발 닿는 대로 느낌대로 골목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색과 모양이 특이한 방범창틀도 한참 쳐다보고 빨래가 단정하고 정겹게 널린 빨간 벽돌담집도 한참 바라봤다.


그렇게 가다 보니 수원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이 나타났다. 성곽길도 연결되어 있었다. 성곽길로 올라가 걷기보다는 아름다운 성곽길을 보면서 그 옆길을 한 참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엄청 멋진 나무가 나타났다. 동화나 영화에나 나올법한 나무였다. 그 나무를 오랫동안 눈과 사진에 담았다.

화서문과 성곽길
성곽길에 있던 아름다운 나무

걷는 곳마다 좋은 광경이 계속 나타났다. 여행에 날씨가 90퍼센트라더니 날씨도 너무 좋았고 꽃과 나무가 가장 예쁠 계절이어선지 어딜 가나 다 예술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라니!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좋구나,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화성행궁과 팔달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여기가 바로 화성행궁이구나 하며 걸었다. 화성행궁 앞에는 보호수들이 있는데 이 나무들 또한 대단했다. 그 멋진 보호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궁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궁까지 보지 않아도 볼 것이 너무 많아 다음을 기약하며 계속 걸었다.

화성행궁과 보호수들


걷다 보니 내가 내렸던 버스 정류장이 다시 나왔다.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보니 행궁동 벽화마을 표지판이 보였다. 여기에 벽화마을도 있었구나 하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듯 오래된 작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펼쳐졌다. 오래되고 낮은 집들이 오종종하게 늘어져있는 작은 골목길들이 재밌었다. 사실 벽화는 그 집들과 그다지 어울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그 작은 골목길 자체는 좋았다.


집 앞의 작은 꽃밭도 예뻤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길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난 그렇게 작은 골목길에 있는 집에서는 살아보지 못했지만 그런 골목길을 지나야 나왔던 초등학교 등굣길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담쟁이로 가득 덮인 집도 보였다.

시간 여행하듯 골목길을 헤매다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거기엔 또 시냇물이 흐르는 멋진 경치가 나타났다. ‘여긴 또 뭐야?’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예쁜 것 옆에 예쁜 것들로 혼자 내적 감탄을 연발하며 신나서 왔다 갔다 하며 감상하고 사진 찍으며 행복했다.


찾아보니 방화수류정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냇물이 아닌가 싶다. 그쪽으로 더 가보고 싶었지만 이미 2시간 넘게 걸어 다녀서인지 조금 힘들어져서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벽화 마을 쪽으로 돌아 나왔다.


행궁동에 다녀온 후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방화수류정, 용연과 부영사, 드라마 촬영지등 볼 것들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어떤 곳에 처음 방문할 때 일부러 뭐가 있는지 자세하게 찾아보지 않는다. 꼭 특정한 어떤 것을 보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가는 것보다 그렇게 계획 없이 여기저기 걷다가 발견하는 재미를 추구한다. 기대 없이 걷다가 마주하는 아름답고 멋진 광경들을 볼 때의 기쁨이 아주 크다.


혼자 여행의 묘미가 그런 거 같다. 느낌에 이끌려 발을 내딛는 것이 좋다. ‘이 골목이 좋아 보이는데? 이번엔 저쪽까지 걸어볼까?’ 이렇게 순간순간 결정하고 걷는 것이 즐겁다. 수원 행궁동 여행은 정말 기대이상이었다. 저번 주에는 서울의 서순라길도 혼자 다녀왔는데 좋았지만 너무 짧고 볼 것이 많지 않아 좀 아쉬웠는데 이곳은 하루로는 부족할 만큼 볼 것이 넘쳐났다. 수원여행이 처음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기대이상으로 좋았다. 가보고 싶게 만드는 카페와 식당도 많아서 여러 번 다시 와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꼭 다시 와보고 싶다. 아주 만족스러운 혼자여행이었다. 이제 이렇게 점점 반경을 넓혀 외국도 혼자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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