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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Dec 16. 2024

나르시시스트와 에코이스트의 관계

모닝 페이지를 쓰다 보니 또 그림 이야기만 잔뜩 쓰고 있었다. 어제부터 그리고 있는 포인세티아 그림인데 배경이 심심한 거 같아 크리스마스 느낌의 체크 테이블보를 검색해서 그려보고 빈티지 벽지를 검색해서 그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자꾸 쳐다보게 되고 내 눈엔 예뻐 보인다. 아직도 완성도가 떨어지고 불안정한 선들에 대한 문제점이 개선되진 못했지만 혼자서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며 기분 좋게 놀이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검색한 테이블보와 빈티지 벽지


이런 글을 쓰다 보니 나를 불행하게 만들던 그런 예민함이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걸 알게 됐다. 이게 노력으로 된다는 게 신기하다. 계속 책을 읽으며 좋은 말들을 – 부모님이나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사랑과 위로와 응원의 말을 –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들려준 것이 정말 도움이 됐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부족한 면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되자 나아지는 방법을 찾는 것조차 재미있게 느껴진다.


글은 써지는 대로 쓰는 게 맞는 거 같다. 지난 2년간 늘 나의 문제, 어려운 인간관계에 대해 썼다. 그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고 자꾸 거슬리기에 그런 글만이 진실 됐고 쓸 수밖에 없었다. 일기에 쓴다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몇 분과 주변 사람 몇 명의 피로감에 대해서 부담감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글에 관심조차 없고 읽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저 내 글을 모으는 공간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있다. 나중에 글들을 쭉 보면 내가 어떤 과정을 겪어왔는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무엇에 집중하고 괴로워했는지 그 마음들이 어떻게 변해갔는지가 보인다.


내가 왜 남들보다 유독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에코이스트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의 불쾌한 행동이나 말에도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데 나는 그걸 내 문제보다 더 심하게 고민하고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성향이 된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아 이 책 저 책 찾아보고 내 마음의 더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면서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날 지배하는 생각은 잘 들여다봐야 한다. 거기에 내 문제도 같이 있었다. 그저 남 탓만을 한다면 그 상황은 되풀이되지만 그걸 계기로 날 들여다보고 그토록 심하게 불편한 이유를 찾아보고 내 마음을 알아주니 좀 더 편안해지고 나아졌다.


최근에 읽은 윤서람 작가의 <나는 왜 배려할수록 더 힘들어질까>라는 책의 내용은 나를 설명해 주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어떻게 이토록 내밀한 내 감정과 생각의 패턴을 잘 알 수 있을까? 라며 놀라웠지만 이 작가 역시 오랜 시간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로 고통은 겪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해가 됐다.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의 타깃이 되기 쉬운 에코이스트 성향인 사람에 대한 책이다.



<서람 tv>라는 유튜브를 통해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처음 알게 되고 그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들의 대화 패턴 등을 알고 많이 놀랐다. 그들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대화패턴을 갖고 있었다.


참다 참다 상대에게 힘든 점을 한 번 이야기하면 그냥 지나가도 될 일을 문제 삼는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 결국 나의 잘못으로 만드는 사람들, 그 대화의 패턴은 내가 평생 겪어 와서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왜 그들과 대화하면 늘 답답하고 결국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과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이 나에게 있는 거 같은 느낌인지를 알려 준 채널이었다. 그 뒤로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책들을 미친 듯이 찾아 읽었다.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과 최근에 원은수 정신과 의사가 쓴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라는 책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


브런치에도 글을 올리고 계신 머님의 <나는 왜 엄마가 힘들까>, < 아직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등등 관련된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그 책들에 적혀있었다. 문제가 뭐였는지를 알게 되자 스스로를 탓하며 나만 맞추면 되는 줄 알고 멍투성이 만신창이인 채로 꾸역꾸역 반복해서 시도해도 해결되지 않아 답답하고 미칠 것 같던 마음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타인이 아무리 잘못해도 끝없이 이해해 주고 덮어주고 용서해주려고 했다.” 에코이스트의 제일 중요한 성향이다. 내가 그랬다. 불편한 관계가 힘들고 그 시간을 견기기 어려워 어떻게든 그를 이해하려 애썼고 끝없이 용서했다. 엄마에게도 그랬고 다른 관계에서도 20년 넘게 그렇게 했지만 그 패턴은 변하지 않고 그런 나를 더 나쁜 사람으로, 나약하고 문제 많은 사람으로 몰아댔다.


“저는 화를 내기보다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뭔가 잘못되면 남 탓부터 하는 나르시시스트는 이렇게 에코이스트가 스스로를 비난할 때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고 자기 잘못까지 얹어서 덮어씌워버립니다.” 내가 평생 억울함과 분노에 가득 찼던 이유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써 조그마한 내 잘못도 찾아 인정하고 잘해나가려는 나의 의도를 그들은 늘 먹잇감 삼아 물어뜯고 내 잘못을 같이 고민해 주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는 자만심을 신나게 채우며 나를 점점 더 끌어내리는 걸 느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내 약점이나 고민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보통 사람들이 ‘사람이 다 그렇지, 그런 상황이면 나라도 그랬을 거야’라는 식으로 인간적 연민과 공감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그럴 때 딱 선을 긋고 놀라움을 표시하며 자신은 얼마나 좋은 딸, 엄마, 며느리인지를 어필했다.


그들과 이야기할 때 왜 늘 내가 쓰레기가 된 느낌이었는지 나쁜 사람이 되는 거 같았는지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별 일도 아닌 일상적인 자식과의 일이나 부모님과의 갈등이 순식간에 나에게만 벌어지는 큰 문제로 부풀려진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한 직후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신나서 떠들어댄다. 이런 패턴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는 그게 다 내가 부족하고 옹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먹으려 노력하고 ‘그래, 이 사람들은 진짜 좋은 사람들인데 내가 옹졸한 거지’라고 자책하곤 했다.


더 이상 그들의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맞추려 노력하며 그들을 순수하게 믿고 의지한 나는 또 감정적 어려움을 토로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진심을 이야기하면 이해받고 친밀해질 줄 알았지만 나는 그들의 자만심을 채워 줄 서플라이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 그건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불안한 감정과 상처받아 아픈 감정을 느끼면 그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대신 그 모든 감정을 다 ’ 비난‘으로 표현합니다. 비난을 통해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나의 불안한 감정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거예요”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는 문장이었다.


엄마가 아무 이유 없이 기분에 따라 나를 비난하고 혼내는 이유가 그거였고 그 비슷한 사람들이 상대가 친밀함의 표시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할 때 충고와 미묘한 비난으로 신나 했던 이유다.


“오은영 박사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 부정적 감정을 너무 과다하게 경험한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이 자기 내면에 조금이라도 생기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가 그래서 조금이라도 관계에 갈등과 불편함이 느껴지면 해결하기 위해 내 감정과 다르게 굽히고 맞추는데 온 에너지를 쓰며 스스로를 소진했다.


다른 친구들이 “쟤 원래 저렇잖아. 뭘 신경 써. 그냥 무시하는 거지”라고 해도 나는 ‘걔가 왜 저럴까 쟤가 저런 행동과 말을 안 하게 하려면 내가 그의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하나?’ 등등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느라 너무 힘이 들었다.


저자는 에코이스트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선 나르시시스트가 떠넘긴 죄책감과 수치심을 받지 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만한 대상을 찾되 사람이 아닌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가 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빠져 드는 일을 찾아서 무아지경을 경험하고 사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라고 썼는데 내가 그걸 이미 찾았고 그렇게 하면서 이 내용처럼 놀랍도록 마음이 편해졌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들과의 갈등상황에 초연해질 수 있었다. 관계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그런 생각할 틈이 없어진 게 너무 좋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것‘이 나르시시스트들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아주 전형적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상대방의 문제점을 들추고 비방하고 조롱하고 모욕합니다”


“에코이스트는 관찰력이 좋고 남들보다 머리 회전이 빠르기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파악하여 모든 것을 너무 정확하게 인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수많은 부당함과 아이러니에 대해 남들보다 더 많이 고통을 느끼게 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흠과 단점까지 가차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스스로의 부족하고 연약함을 한순간이라도 잊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너무도 정확하게 나를 설명하는 말이라 많은 위로가 됐다. 머리 회전이 빠르진 않지만 어떤 그룹이든 그 그룹의 보이지 않는 관계망이 다 보여서 내가 직접 당하지 않은 부당한 대우까지도 나를 괴롭혔다.


나에게 그러는 것도 아닌데도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거를 보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그리고 나의 단점과 약점까지 이야기해야 친해진다고 생각해 친밀한 사람에게 나의 갈등, 감정, 약점들을 말하곤 했다. 그게 정상적인 사람들과는 친밀해지는데 도움이 됐지만 나르시시스트들에게는 나를 함부로 해도 된다는 신호가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앞에서는 절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마세요. 특히 약점이 될 만한 이야기, 내가 잘못했던 일, 실수했던 일, 내 약점, 흠, 단점 등은 절대 말하면 안 됩니다. 상대가 아무리 좋은 사람으로 보이더라도 쉽게 속 이야기를 꺼내놓지 말라는 거예요”너무 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기에 이런 나의 솔직함을 좋아해 주고 친해진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도 초반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좋은 사람인 척하는 미묘함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내현 나르시시스트들은 소심하고 약자처럼 보이기도 해서 판별하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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