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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22. 2024

걷는 사람은 행복하다.

드디어 깁스를 풀었다. 벌써 2주가 되어가고 있지만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다리가 신기하고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자유로움을 매일 새롭게 느끼고 있다. 아직 뼈가 다 붙은 건 아니다. 무릎뼈는 완전히 낫기까지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갈 때나 쪼그려 앉을 때 아직 통증이 있고 뻐근하며 불편하다.


그래도 이렇게 별문제 없이 건강하게 회복되어 내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 다치기 전에는 거의 뛰듯이 빠르게 걷는 사람이었는데 아직 그렇게 걷지는 못해도 거의 6주 만에 병원에서 정류장까지 걸어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던 날 너무 행복했다.


전에는 동네가 복잡하다며 불평하며 걷던 거리가 새롭고 사랑스러웠다. 늘 지나다니던 길에 있던 우체국도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담쟁이넝쿨 사이사이에 나팔꽃과 노란색, 분홍색 꽃이 어우러진 커다란 창문이 있는 아름다운 벽돌 건물이었다.


나으면 가야지 하며 얼리버드로 예매해 놓은 유코 히구전시회에도 갈 수 있고 친구들과 숲길을 얼마든지 산책하고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늘 해서 당연했던 일상이 신선해졌다.


심지어 그렇게 하기 싫던 집안일까지 괜찮게 느껴졌다. 딱 중간에 있는 무릎을 다쳐 거의 다리 전체에 깁스를 하고 있어 더운 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땀범벅이 되고 처음 몇 주간 목발을 짚고 다닐 때는 작은 물건하나 이동하기 힘들어 꼭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했다.


밥 차려 먹는 일, 커피 잔을 소파까지 이동하는 일, 아침에 침대에서 거실로 핸드폰을 이동하는 일 같은 사소한 일에도 남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중에는 시장바구니에 넣어 어깨에 메고 이동하는 방법을 생각해내기는 했지만 내 무거운 몸 하나도 목발로 이동하기 힘들어 무거운 물건은 역시 남의 손이 필요했다.


그런 형편이니 내 눈에 거슬리는 늘어진 물건들을 정리해 달라고까지 요구하기는 어려워 집안은 나날이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남편과 애들은 집안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인지 지나다니며 발에 걸리는 물건들도 꼭 내가 부탁을 해야만 치웠다.


나중에는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시켜야 하는 나도 그 요구를 따르는 식구들도 지쳐 그냥 엉망진창인 채로 지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도저히 참기 힘들어 ‘청소연구소’라는 곳에서 도와주시는 분을 불렀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화장실과 집안이 반짝반짝 해지고 정리가 되어 내 정신건강에 너무 좋았다.


그렇게 두 번 정도 도움을 받고 나중에 다 나아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 낫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 손으로 원하는 대로 치우는게 더 좋았다. 어쩔 수 없이 남의 도움을 받고 지냈는데 그냥 내 손으로 하는 게 제일 속 편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하기 싫던 정리와 화장실 청소를 개운하게 내 손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지 몰랐다.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는 물건들과 싱크대 장, 냉장고 속 음식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데 오히려 힘이 솟았다. 가만히 앉아있느라 순환도 안되어 힘들었는데 이렇게 움직이니 오히려 활력이 생겼다.


평범하고 늘 똑같은 일상을 권태로워 했었는데 새 삶을 얻은 듯 음미하는 기회가 됐다. 집 앞 카페에 갈 수 있는 것, 옷 정리하고 쓰레기를 잔뜩 내다 버릴 수 있는 것, 양반다리 하고 앉을 수 있는 것, 원할 때 여기 저기 가서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는 것, 모두 모두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이 평화롭게 지속되는 일상의 감사함을 되찾는 게 이번 사고의 의미였나 보다. 이 일로 얻은 게 많다. 통으로 주어진 시간 덕분에 그림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의미 있게 쓰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할 기회가 되었고 이제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을 시작할 시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억지 감금은 내가 인생의 전환점에 섰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나 '는 생각까지 들었다.


늘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불평했는데 내가 아플 때 옆에서 군소리 한 번 없이 도와주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감사함도 깨달았다. 아프고 힘들 때 가족의 힘이 얼마나 큰지 존재만으로도 날 채워주고 지지해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늘 내가 가족들을 돌보고 내가 더 많이 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이렇게 몸으로 느껴야 깨닫는다. 편하게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다는 것, 내 마음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었고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다는 것, 재밌는 드라마와 영화를 실컷 볼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운 음악을 원하는 대로 들을 수 있다는 것, 모두 값진 일이었다.


이 풍족한 사랑과 축복에 대한 감사함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곧 익숙함이 찾아오고 또 다른 불평거리가 생길 때 이 글을 찾아 읽고 이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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