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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30. 2024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

요즘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있다. 그림 관련된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몇 달 전 읽은 Maud Lewis의 그림과 삶에 관한 책도 다시 찾아봤다. Maud Lewis가 초라한 집에서 심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몸 여기저기가 뒤틀려 있지만 해맑은 얼굴로 그림 그리는 모습이 나에게 깊이 남았다.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전혀 대단한 삶을 살지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불행하다고 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누구보다 풍족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죽기 전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살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림들. 매일매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 어디 가서 찾을 필요도 살 필요도 없이 즉시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 보였다. 결과물도 아름답지만 그것을 지어내는 순간을 사는 그녀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며칠 전 가본 유코 히구치 전시회에서도 세밀하게 펜으로 그린 고양이 털들과 수많은 나뭇잎들, 작은 종이에 정성껏 그린 귀엽고 예쁜 그림들을 보는 데 너무 좋았다. 100가지 색깔의 물감을 농도별로 보여주고 그 색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물이나 동식물을 그려 넣은 그림, 디즈니, 구찌와 콜라보한 그림들, 모스 버거 광고처럼 상업적인 목적에서 그린 그림들과 영화 포스터를 자신의 색으로 재해석해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다수 있어서 그것도 반가웠다. 굉장히 좋아하는 스티브 킹의 작품을 영화화한 <It>도 있었고,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이라는 장 꼭또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의 포스터같이 사람들이 잘 몰라 대화할 수도 없었던 작품들도 있어서 내적친밀감을 느끼며 환호했던 시간이었다. 그 밖에도 내 기억 속 깊이 있던 것들을 소환해 주는 작품들이 많아 정말 즐겁게 감상한 시간이었다.


그 모든 게 작가의 즐거운 놀이를 본 거 같아 나까지 행복해졌다. 나의 취향과 맞는 것들이 많았는데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냥 머릿속으로만 느끼고 끝나는 게 보통인데 이 작가는 그것에 자신의 색까지 입혀 아름답게 재창조해 냈다는 게 너무너무 부럽고 좋아 보였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갇혀 있던 좋아하는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그렇게 새롭게 창조해내는 빛나는 시간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확실하게 손에 잡히고 눈에 보여지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그런 삶은 어떨까 상상해보게 됐다.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26년 동안 16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던 모지스 할머니도 생각난다. 이 작가들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걸 알게 됐다. 주변의 평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표현한 사람들. 나도 그렇게 해맑은 얼굴로 매일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싶다.

<박명선 갤러리 블로그>에서 가져온 모지스 할머니 그림들


사람들을 만나 이어지는 시간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긴 시간을 지나 나 혼자서도 온전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이 되어야 사람들과의 시간도 더 즐겁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배워가고 있다. 요즘엔 그림 그릴 것을 찾아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을 그리는 일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모지스 할머니가 평생 살아온 시골의 풍경을 소박하게 그려낸 그림들과 모드 루이스의 그림책 같은 동화적이고 따뜻한 느낌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어떤 성공에 대한 야망과 욕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 그들의 얼굴 표정과 닮아있는 그 그림들이 편안하다. 나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냥 지나치던 예쁜 것들을 찾아 나만의 색을 입히고 나의 관심과 따뜻함까지 표현하고 싶다.


오늘도 어디로 가야 그런 장면들을 만날 수 있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본다. 홍제천, 중구의 어느 거리, 좀 더 멀리 동인천에도 내가 좋아하는 오래진 집들이 잔뜩 있다던데 가봐야지 생각하는 시간이 즐겁다. 유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들, 내가 늘 다니던 동네 우체국에서, 지하철역 앞에 늘 서 있었는데 이제야 발견한 꽃 파는 트럭에서 찾은 그런 예쁜 것들을 많이 많이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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