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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21. 2022

자기 계발서는 별로라고?

나는 얼마 전까지 자기 계발서는 절대 안 읽어 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난 로맨틱 코미디는 안 봐하고 비슷한 맥락의 말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편안하고 재밌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시시하고 여자들의 로맨스 대리만족이나 시켜주는 영화는 수준이 낮아서 싫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 보게 됐다.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약해졌는지 어둡고 불안한 영화는 보고 나면 그 의미가 너무 직접적으로 와닿으며 감정이입이 되고 힘이 든다. 나이 든 만큼 세상을 알아버려서 일까? 대신 약간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행복하게 결말을 맺고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로맨틱 코미디가 좋아졌다.


사람의 상황에 따라 좋고 싫음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모든 면에서 좋고 싫음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느낀다. 내가 보는 세상이 중심이고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딴 세상을 모르는 거였다. 그래서 이제는 싫다고 말하기보다는 그거는 내가 아직 잘 몰라라고 얘기한다.  다양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다 보면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정말 좋은 영화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는 어떤 점 때문에 그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알아볼 수도 있다. 이 과정이 현실에서는 생략되고 빠르게 판단하고 순식간에 좋다 나쁘다 별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아직은 더 많다.


자기 계발서에 대해서도 편견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설 그것도 세계 명작이나 고전 위주로 읽었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철학서 등을 꾸역꾸역 읽었다. 읽고 나면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선지 내 인생에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느라 바빠 책과 멀어지게 됐다. 그 책들을 소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화하기 어려운 책들이었다. 내 문제와는 동떨어진 내용이었을 거고 아니면 그냥 스토리만을 따라가며 재미로 읽었기 때문이다. 그 책들은 나에게 거의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그냥 내 취향을 결정하는 아주 조금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독서천재 홍 대리>라는 책을 읽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눈길도 주지 않을 독서 자기 계발서였다. 그 책을 읽고 다시 독서욕이 불타올랐다. 자기 계발서를 한 번도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싫다고 했는데 의욕을 심어 주는 데는 큰 역할을 했다. 그 책을 읽은 후 지금까지 책을 읽고 있다. 나의 삶에 방향을 가르쳐주는 좋은 책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책 자체는 책을 읽고 속물적 성공을 거머쥐는 방향을 제시하는 거일 수도 있다. 아마도 나 자신도 그런 기대로 처음에는 그 책을 읽었을 거다. 아니면 지금은 기억이 왜곡되었을지 모르지만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뀐다는 의미가 꼭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지금의 나처럼 자신을 알게 됨으로써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때는 사회적 성공을 이룬다거나 마법처럼 책만 읽으면 뭐가 된다는 내용에 확 꽂혀서 그때부터 미친 듯이 읽기 시작했다.


중독처럼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읽는 것만으로 내가 이미 그렇게 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읽는 것만으로 이미 좋은 습관을 갖게 되고 성공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동안은 그런 느낌만으로 읽고 여전히 과거의 습관 속에 있었다. 그러다 그 책들이 넘쳐흐를 만큼 채워지자 드디어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 책들을 읽고 집안을 싹 치우고 묵은 짐들과 나의 오래된 고민들도 털어버리게 되었다. 집안에 쌓인 묵은 짐처럼 늘어난 체중도 줄일 수 있었고 좋은 식습관도 갖게 되었다.


나의 현 상태에 대한 통찰력이 생겨 현실적인 고민들을 의식 위로 끌고 나올 수 있게 되었고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접어두고 숨겨 두었던 문제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난 훨씬 가뿐해졌고 살만해졌다. 그 과정 속에서 늘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워졌던 시간들이 훨씬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게 되었고 그런 것들을 하며 나의 하루를 채워나갈 힘을 얻었다.


그 모든 것이 책을 읽고 시작된 일이다. 그렇게 새로운 습관을 들이고 움직이고 나니까 인생이 훨씬 살만해졌다. 내가 다시 태어나는 느낌까지 들었다. 집을 정리하고 잡동사니가 사라지고 나니 다시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다시 일기도 쓰고 글도 쓰게 되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니 내가 원하는 게 뭐였는지 옛날에 깊숙이 감춰두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 쓰레기들 밑에 감추어졌던 나의 문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현실을 도피하며 환상의 성속에 숨어있었다. 많은 옷들과 물건들로 내가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인 척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척을 했던 거였다.


인문학 서적만이 좋고, 철학서만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답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책을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찾으면 된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 세계 명작을 읽고, 대학교 때 철학책과 고전을 계속 읽었던 거는 그때 내가 찾고 있던 답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 일거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내가 결혼을 하고,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기는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서, 실용서, 육아서 등이 필요했던 거였다.


중년이 되어서 인생을 다시 돌아보면서 나도 잘 몰랐던 내 모습을 찾게 도와주고, 나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언어를 찾기 위해 심리학 책을 읽게 되었다. 스스로 나의 과거를 해석하고 나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나의 저 깊은 곳에 있던 진짜 마음을 알게 도와주었다. 내가 분노와 조급함을 갖게 된 이유를 찾고 현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관계를 망쳐버리지 않게 도와주었다.


시부모님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죽음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죽음이 두려워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잘 알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훨씬 더 공포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죽음에 대해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고,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 영성 도서를 많이 보게 되었다.


명상에 대한 책과 영적 도서는 나에게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님을 인간의 현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 이렇게 독서는 그때그때 내가 찾는 답을 찾은 과정에 선생님이 되어주었고 친절한 친구가 되어주었고 사랑의 언어가 되어 나를 위로해주었다.


난 중년에 읽게 된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활을 바로 세워줬고, 나를 찾게 해 주었고, 죽음 앞에 두려움 없이 서게 해 주었다. 지금도 그 과정 중이고 어떤 날은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그런 날은 죽음이 사무치게 두렵고 나의 과거가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 내 기분에 맞는 책을 들고 조용히 읽기 시작하면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따뜻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현실을 직시하게 도와준다. 그 두려움과 수치심은 가짜라고, 내가 만들고 부풀린 것이라고... 그렇게 명상하듯 독서에 몰입하며 나를 다시 정화하고 가다듬으면 다시 살 힘이 생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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