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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by 박수종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라는 책에 “Maslow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려면 음악가는 음악을 만들고 시인은 시를 써야 한다. 인간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하는 최상의 단계는 자신답게 살아가는 자기실현의 단계다.”


“타고난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최대한으로 성장하고 발전시켜서 자신의 참자아가 발현될 때 우리는 행복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참자아가 억압받고 왜곡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아프고 병이 든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Maslow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지 알고 그 사람으로, 즉 참자아로 살아가야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참자아가 미처 피어나기도 전에 억압받고 왜곡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때 인생이 고통이 된다고 한다.

참자아를 찾고 자아실현을 시작할 사춘기에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세계적 수준인데 행복도는 최저 수준이다.


의대 집중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져서 유아기부터 의대준비를 시키는 이상한 나라기도 하다.


아이가 시인으로 태어났는지, 건축가인지, 가수인지, 과학자인지, 선생님인지, 의사인지를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일단 공부에 올인시키는 무시무시한 용기를 보여주는 부모들이 많은 나라다. 만 3,4세에 모차르트나 피카소 정도의 재능을 보이지 못한다면 누구나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부나 하라고 닦달한다.


예술 분야에서 부모들이 원하는 정도의 성공을 하려면 의대 가기보다도 힘들 수 있다. 그 정도 성공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라면 취업 잘 되는 과에 가기 위한 공부를 기저귀를 막 뗀 아이에게도 강요한다.


하지만 공부도 그 어떤 분야보다 적성에 맞아야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거 같다. 우리 애는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잘할 거라는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잘 그릴 거고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잘 부르게 될 거라는 말처럼 맞지 않는 이야기인 거 같다.


많은 부모들이 원하는 의대나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예술 분야만큼 재능이 필요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게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감을 느끼듯 공부에도 그런 재미를 느껴야 부모의 요구에 맞는 정도에 도달할 수 있을 거 같다.


적성은 아이가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스스로 찾아야 한다.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옆집 아이가 이런다더라, 요즘 세상에는 이런 걸 해야 한다더라 하는 말들에 휘둘려 아이를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세상이 떠드는 것들을 하느라 태어나면서부터 학원 가방을 메고 삶을 시작한다.


적성에 맞지 않아도 사교육의 힘과 죽을 것 같은 노력으로 그 자리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자아에서 멀어진 아이는 평생 공허감과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많은 현대인이 그렇듯 직업인으로서의 자신과 참자아가 분리된 채 공허한 일상을 한 줌의 쾌락으로 보상받으며 살아나간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방해 없이 자신의 소명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주변의 억압과 감언이설로 당장 쉬운 길로 들어선 아이는 40대, 50대가 돼서도 방황이 계속되거나 모든 것이 불만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자명한 ‘진실’을 외면한 채 현실감이 없는 몽상가나 추구하는 우스운 일인 듯 그다지 심각한 일이 아닌 듯 어른 행세를 하며 현실을 살아나간다.


아이가 꿈을 쫓아가려고 하면 ‘어디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라는 시선, ‘네가 하겠다고 했으니 숨도 쉬지 말고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시선, 돈을 많이 쓰거나 현실적으로 힘듦을 표현하면 ‘거봐라 현실이 얼마나 혹독한데 그렇게 한가하게 꿈이나 좇고 있느냐’는 시선들이 아이들의 날개를 꺾는다.


경제적 압박과 그 정도 하는 사람은 많다는 비웃음, 꿈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겨내며 끝까지 참자아의 목소리를 쫓을 수 있는 아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불안감을 조성하고 돈을 벌 수 있는 확실한 직업을 갖지 않으면 얼마나 삶이 망가질지, 바닥으로 추락할지를 끝없이 주입한다.


부모가 그러한 불안감을 주입하다 보니 아이들은 꿈을 좇는 일이 현실을 외면한 채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거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어 일찌감치 포기하고 안전한 철밥통 직업 쪽에 줄을 선다.


한때는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이나 공무원 되는 길을 쫓았다. 지금은 출산율이 떨어지고 공무원 월급이 적다는 말이 나오면서 일찌감치 의대 약대 쪽에 줄을 서고 있다. 적성과는 상관없이 그저 안전한 직업으로 모든 아이들을 내모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


경제적 안정과 강남 아파트가 모든 사람의 꿈이 되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낙오자, 인생의 실패자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이 점점 줄어든다. 다른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좋은 모델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 삶을 스스로 찾아보려는 의지를 내지 않으며 너무나 쉽게 현란한 모습과 부를 과시하는 인플루언서와 연예인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 아이들을 꿈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명품과 물질적인 것에 점점 눈이 멀어간다.


그 어느 시대보다 삶은 풍요로워지고 사람들의 외모는 아름다워졌지만 그 어느 시대보다 내면은 텅 비어 간다. 참자아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화도 많아지고 시기와 질투로 불타오른다.


부모들이 먼저 참자아를 찾고 물질적 가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불안감을 물려주지 않고 믿고 기다려주는 여유를 보일 수 있다. 아이들에게 다른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늦었더라도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고 참자아가 인도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의 마음속 불안도 조용히 사그라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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