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계곡에서 놀다 머리를 집어넣고 바라본 물속의 세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와 이 세상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온함. 그 느낌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그 후 수영을 배우고 잠수했을 때 물속의 고요함 속에서 그 순간이 기억났다. 온갖 소음이 사라진 물속의 침묵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명상 같은 느낌일까? 물속 세상과 나만이 존재하는 느낌. 내가 세상을 인식한 순간이었다. 수영은 잘 못하고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물속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에는 늘 마음이 간다.
그런 순간이 몇 번 더 있었다. 서너 살 때 살던 집 마당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나무 주위를 돌며 나뭇잎과 뭔지 모르겠는 작은 열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던 내가 있었다. 나무를 보고 있는 나를 의식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억해냈다.
어릴 때부터 달을 좋아했다. 현실감 없이 커다랗게 뜨는 보름달을 볼 때의 경이로운 느낌이 좋았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나와 늘 같이 있지만 만나 지지 않던 나, 진짜 나와 만나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달이 뜨고 별이 보이는지 자주 살핀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는 엄마를 마중 나가면 하늘을 쳐다본다. 치매인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 아프고 힘든 시간 속에 나를 위로하는 별빛을 찾는다. 엄마가 치매인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가 하는 이상한 행동들, 냉장고에서 물 한잔도 스스로 꺼내 먹지 못하고 매일매일 돈이 없어졌다며 온 집안을 다 뒤지고 나서야 하루가 끝나는 그런 일들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진으로 다 표현되지 않지만 유난히 밝았던 달과 별
병임을 인정해야 엄마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당당하고 건강했던 엄마가 어눌하고 약해져서 내 도움 없이는 이 닦고 목욕하는 일, 식사 같은 기본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니 내가 거부했던 거 같다. "왜 그걸 이렇게 하냐고, 왜 못하냐"고 소리치고 화를 냈다. 그래서 힘들고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엄마를 미워하며 그런 날 자책하는 시간들 속에 있었다.
마음이 힘들 때 자주 하늘을 들여다보고 달과 별을 찾았던 것 같다. 현실에서 일이 술술 풀리고 사람들과 즐겁게 잘 지낼 때보다는 외롭고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늘을 들여다보고 나무도 만져보고 꽃도 한참 들여다본다.
나를 이 골치 아픈 현실에서 사라지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별을 보는 게 그래서 그렇게 좋았다. 엄마와 같이 살면서 평생 가장 자주 별을 찾고 사진도 찍고 낮에도 그 사진 속의 별들을 보았다.
어느 날 저녁에는 정말 밝은 별을 보았다. 너무 밝게 빛나서 정말 별이 맞을까? 인공위성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다음 날 기사에 토성과 목성이 어쩌고 하는 내용을 보니 목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성의 띠가 없었으니 목성이었을까? 사실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늘의 별이나 달을 볼 때의 그 비현실적인 느낌이 좋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감동의 순간들이 부정적 의식을 정화시키는데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사실인것 같다.
이 힘든 생활들을 가뿐히 뛰어넘는 초월적인 세계가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 들고 이런 작고 사소한 일들에 대한 걱정이 그 순간만큼은 저만큼 물러나는 느낌이 좋다. 그러다 별을 바라보는 순간이 지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고 백번을 내려놓으려 해도 잘 되지 않는 작은 고민들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