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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Aug 10. 2022

할머니 눈물에 답하다

퇴근 1시간을 앞두고 최근 상담을 시작한 할머니께서 오셨다. 할머니와는 세 번째 만남이다. 첫 만남은 30도가 넘는 여름철, 환기가 되지 않는 작고 좁은 방에서 시작되었다.  두 시간 가까이 할머니는 입에서 나오는 단어만큼 눈물도 같이 흘렸다.


상담가가 에너지를 두배로 써야 하는 1순위를 꼽는다면 그건 바로 눈물 흘리는 사례자다.


특히 연세 많은 분들의 눈물을 본다는 건 쉽지 않다. 세월만큼 눈물도 압축된 진액 같다. 나이만큼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삶을 짓누른다.

사례관리자로서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삶은 단편적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대화는 퇴근시간 넘겨 끝이 났지만 내용은 되감아져 머릿속을 회전한다.  때마침 할머니께서 긴 문자를 보내왔다.  


어제 대화중 제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진단하는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 나이에 남에게 이렇게 까지 치부를 다 드러내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나 자신이 몹시 아프네요. 모든 건 제가 잘못 살아온 결과이고 후회보다 자책뿐입니다. 지금은 형제들도 모두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려 하지요. 모두 너 때문이다 네가 만든 일이다. 네가 원인이다. 넌 그 아들 때문에 결국 거지로 살게 되었다! 이런 질책만 돌아오고 있고 나 역시 모두 인정합니다.


내 말을 들어준 선생님께 감사하고 날 물질로 돕지 않는다 해도 그 또한 누구 탓이 아니니 난 괜찮아요. 이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나를 잘 다스리며 살 수 있을까 만 생각합니다. 어제 오랜만에 내가 나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또 기회가 되면 선생님께 내가 더 단단 해질 수 있는 의견을 듣기 바랍니다. 고마웠어요. 낙심하지 말고 울지 말고 날 더 사랑하자!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겠습니다. 무더위 수고하시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전해지길 바랍니다.


한참을 읽고 또 읽었다. 필요했던 건 잘못의 질책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했던 내 마음이 전달된 것 같다.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문제 해결책이 아닌 자책과 후회를 줄이는 생각 전이다. 그리고 현재 삶을 스스로 직면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질타와 비난이 아닌 '문제를 바라보되 후회하지 말 것, 확인하되 다음 단계를 위한 발 편으로 사용할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한동안 할머니 문자를 바라보다 길고 긴 답장 문자를 쓴다.  


아침에 할머님의 문자에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가 다 현재의 상황에 할머니를 탓할 수 있겠지만 저는 할머님께도 그만한 이유가 있으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제 들은 할머님 젊은 시절 마음 고통이 느껴져 할머님께서 매달릴 수 있는 아드님밖에 없으셨고 그 아드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현재 상황이 제일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할머니의 모든 것을 주었던 아드님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독립하지 못한 채 여전히 할머니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어제 할머니와의 만남 이후 오늘 아침까지도 할머니의 아픔이 느껴져서 계속 생각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중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이제부터라도 할머니께서 의연하게 하루하루 잘 지내실 수 있도록 작은 것 하나라도 챙겨드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기에 지나온 선택은 지금의 결과로 수용하고 앞으로의 선택에 더 이상 힘든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할머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그 누구보다 할머님 스스로 할머니를 방임하지 않고 보살피는 일입니다. 세끼 식사를 잘 챙겨 드시고, 아들과 손자 모두에게 에너지를 쏟지 않고 처리해야 하는 일의 완료가 된 다음을 생각해보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 속에서도 생활을 유지하고 삶을 잘 살아가시는 방법에 대해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제가 함께 고민하고 생각의 결정을 내리실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머님께서 아드님께 해드릴 수 있는 건 진심으로 다 하셨다, 최선을 다 하셨다는 생각입니다. 아드님께서 지금의 삶을 살아가시는 건 결코 어머님의 탓이 아닙니다. 사회복지사 이전에 저도 어머님과 비슷한 연배의 홀어머니가 계시고 저 역시 아드님과 가까운 나이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인생살이 하나같이 쉽지 않고 고통에서 나오는 과정 역시 한 번에 나아질 수도 없겠지만 그 시작은 모래 알갱이만큼이어도 괜찮습니다.       


이제 아드님도 그리고 손자분들은 할머님 마음과 삶 속에서 독립할 시기입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선택하여 살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그 우여곡절이 그분들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할머니 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일상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염려와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할머니가 그만 우셨으면 좋겠다가 아니다. 그저 할머니가 흘릴 눈물 양이 줄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사례관리자로서 내가 잘 쓰였으면 한다. 그래도 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 힘들다. 나도 그만 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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