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제목 그대로다. 30년 살면서 처음으로 내 신발을 샀다.
나는 보통 의류며 화장품 같은 부가적인 상품들은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구매를 해서 중국으로 가지고 돌아오는 편이다. 중국 현지 브랜드에 대해서는 어떤 브랜드가 가성비가 좋은지, 질이 좋은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잘 아는 브랜드를 맘 편히 구매하는 편이다. 또 엄마와 함께 나가는 쇼핑에서 따라오는 즐거움은 덤. 엄마가 항상 좋은 물건을 잘 사주셨기 때문에 나는 엄마와의 쇼핑을 좋아했다. 그렇다, 나는 30이 다 되도록 ‘엄마가 사주는 옷과 신발’을 착용했다.
요즘은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한국에 근 2년째 못 들어가고 있다. 아마 운이 좋아야 내년 이맘때쯤에 들어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쉽지만 사재기 쇼핑은 올해도 스킵이다.
여름 샌들 몇 켤레를 제외하고, 나에게는 봄, 가을, 겨울에 신을 수 있는 신발 3켤레가 있(었)다. 갈색 가죽 앵클부츠, 검은색 워커, 흰색 운동화. 2012년 겨울, 워커의 매력에 빠진 이후로 나는 운동화보다는 워커나 부츠를 즐겨 신는 편이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에는 사실 신발 걱정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엄마랑 발 사이즈가 235mm로 같았기 때문에 엄마랑 항상 신발을 같이 신었다. 말을 바꾸면, 나는 엄마 신발, 내 신발 가릴 것 없이 마음대로 신나게 신었다. 반대로, 엄마가 내 신발을 신으셨던 기억은 거의 없다. 엄마가 상점에서 예쁘다고 눈여겨보시고 구매한 신발도 결국에는 내 신발이 되었다. 그 뒤로 엄마는 나를 위한 신발을 사 오시거나 나와 함께 신을 신발을 사 오셨다.
중국으로 대학원을 가면서는 내가 좋아했던 갈색 앵클부츠와 검은색 워커를 홀랑 챙겨서 유학길에 나섰다. 2년을 주야장천 이 두 켤레만 신어서인가. 짧지만 길었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신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신발이 이 지경이 되도록 구두 약도 안 발랐냐’면서 나를 책망하셨다. 아…. 그동안 나는 신발을 신을 줄만 알았지, 관리하는 것은 우리 엄마 몫이었구나. 약을 슥슥 발라주니 신발이 다시 새것 같아졌다. 다만 검은색 워커는 갈색 앵클부츠보다 더 험하게 신은 탓에 구제 불능 상태가 되었기에 그냥 버리기로 결정했다.
중국으로 취업을 하면서는 다시 갈색 앵클부츠와 엄마가 얼마 전에 구매하셨다던 검은색 워커를 집어서 다시 북경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대학원 생활 때와는 다르게 구두약을 자주 발라줬지만, 3년 넘게를 주야장천 신어 대니 생활 흠집은 피할 수 없었다. 얼마 전에 보니 두 신발 모두 많이 낡아 있었다. 아끼던 신발들인데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 하는 때가 왔나 보다 싶어서 조금 슬펐다. 이번에도 역시 검은색 워커가 특히 많이 달아 있었다. 앞코 부분에 걸을 때마다 접히는 그곳은 아예 이제 가죽이 너덜거렸다.
두 켤레 모두 버릴 생각을 했기에, 그리고 이제는 나이와 관절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화를 자주 신자는 생각으로, 고민 끝에 인터넷으로 새 갈색 부츠를 주문했다. 혼자서 뭘 사본 경험이 적었던 나는 엄마에게 확인이라도 받고 싶었는지, 물건이 도착한 날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서 전송했다. 엄마는 예쁘고 괜찮은 물건 잘 샀다며 말씀해주셨다. 고작 신발 한 켤레 산 것뿐인데 기분이 참 묘하다. 이제는 정말 엄마로부터 독립했다는 생각에 조금 서운했다. 앞으로는 신발 구매 말고도 혼자 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겠지.
신발이 도착했으니, 이제는 낡은 신발을 보내줄 때. 막상 버리려고 하니, 엄마와의 추억이 많이 담겨 있는 갈색 앵클부츠는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