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아르바이트에서 직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수업을 하던 당시, "나는「전문 과외 선생」이야"라고 스스로를 칭했습니다. 하지만 진짜들의 리그에 들어가며 지난 1편에서 느꼈던 충격과 간극이 너무 커 한동안 의기소침해졌던 거 같아요. 제가 몇 개의 수업을 뛰어 버는 걸 그분들은 수업 하나에서 받고 있었고 제 총 차수와 시간보다 적었으니까요. 학생들의 점수를 관리하는 것도 리소스가 최소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경험치와 명성이 높다 보니 저처럼 일일이 노트 등에 정리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저 수업에만 집중했지, 수업 외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어요. 전 수업만큼 학생관리를 위한다는 일에 상당한 시간을 쓰고 있었죠. 정말 열심히 했느냐 하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거의 하루 2~3시간 겨우 자며 수업준비를 하고 회고를 하고 종일 수업을 뛰었으니까요. 하지만 잘 되는 팀에 들어가니 알아서 수업은 많이 들어왔는데 문제는 그만큼 힘에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베테랑 강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과목을 지도하던 강사는 수능이 끝나면 두 달간 수업을 아예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두 달간 당해 내용 분석, 교재 정리, 내년도 수업 기본 교재 준비 등에 몰입했죠. 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수업에 집중했습니다. 본인의 수업 방식이 명확했는데 그 방식에 맞는 학생만 골라 수업을 하더군요. 저를 포함한 모든 강사가 자기 스타일이 있었지만 대부분 조금씩은 맡는 학생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하는데 그분은 딱 자기가 가진 스타일과 교재에 맞는, 딱 그 부분이 취약한 학생을 골라 맡았습니다. 그러니 당해 입시 제도나 모의고사 유형에 특별한 변형이 없는 한 미리 준비한 교재와 방식으로 수업에 매진했습니다.
다른 유명 강사는 그들이 아르바이트생을 사적으로 고용해 교재 작업이나 기타 부수 작업을 맡기고 있었다는 거고, 어떤 강사는 본인 수업 일정 조율까지도 맡기고 있었죠. 가장 잘 나간다던 논술 강사는 조카를 기사로 고용해 이동 시간에 쪽잠을 자거나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방법의 차이는 조금씩 났지만 공통적인 건 수업준비로 본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여기서 본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수업에 충실하냐를 떠나 수업을 더 받을 수 있느냐를 포함합니다. 그룹으로 움직이는 만큼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필요에 따라 수업을 더 맡아야 할 수 있고, 그 객단가가 크니 이건 아주 중요한 책임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수업이 들어오면 이미 잡힌 수업을 기준으로 비는 시간에 새 수업을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대치동에서 중계동으로 확장하며 같은 날 한 수업이라도 다른 동네에 생기면 이동 시간을 감안하면 거의 3개 수업을 할 시간에 한 개 밖에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도 이미 잡혀 있던 수업으로 중구난방이었죠.
고민하다 그룹 회의 때 도저히 이동으로 버리는 시간이 많으니 날짜들 조정을 해야겠다. 보니까 어느 과목과 이게 겹치고 어쩌고~~. 막내뻘 강사였기에 이 얘기를 하는 데에 꽤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반응은 여태 왔다 갔다 했냐는 거.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냐고 했죠.
이 외에도 여러 사례를 통해 당시 프로들로부터 배운 것들이 좀 있습니다.
① 팀으로 일하든 개인으로 일하든 나의 뾰족함을 확실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② 무작정 일을 다 받고 열심히 한다 해서 그게 베스트는 아니다.
③ 핵심일이 아닌 건 물론이고, 핵심일에 지장을 준다면 그게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우선순위가 바뀌게 두어서는 안 된다.
④ 내 시간의 값을 정확히 인지하고 시간과 잔돈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⑤ 비효율이라 판단되고, 이걸 개선할 때 얻는 가치가 훨씬 크다 확신한다면 말하길 주저하지 말라.
⑥ 열심은 프로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별 가치가 없다는 거, 열심보다 성실이 훨씬 중요하다.
⑦ 과정보다 결과라는 말로 과정을 간과하는 게 아니라 과정만큼 결과도 중요하다. 둘은 상관관계에 있지만 인과관계를 갖는 건 아니며 전체로 보면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우린 가끔 스스로 알게 모르게 얼마나 본인이 열심인가를 어필하곤 합니다. 얼마나 잠을 덜 자면서 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지, 얼마나 '어디까지 더' 하고 있는지, 남들은 안 하는 걸 본인은 거기까지 더 열심히 하고 있는지 등을요.
그런데 그 열심이라는 건, 냉정히 보면 스스로 알면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건 그래서 "뭘, 얼마나 해냈느냐"지 "뭘, 얼마나 품을 들였냐"는 아니거든요.
본인의 열심을 어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뭘, 얼마나 품을 들였냐"를 강조하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으니 열심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누가 봐도 성과가 명확한 사람들은 자신의 열심을 강조하던가요?
조직에서도 동료나 상사가 "저 사람 정말 열심히 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볼까요? 성과가 확실하고 독보적인 사람에겐 "잘해"가 먼저 나오지 "열심히 해"란 말을 먼저 하진 않습니다. 잘하는데 혹은 잘했는데 진짜 열심히 했거든 정도죠. 성과가 나오진 못했더라도 전문성이 누구나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성과를 못 내면 정말 전문가라곤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론적이거나 지식적으로 풍부할 수는 있어도 실전에서는 미흡하다는 게 되니까요. 하지만 성과라는 건 무조건 나온다 볼 수는 없고 변수도 많기에 잘하던 사람, 전문가인 사람이 한두 번 실패하거나 미흡했다 해서 그 가치 폄하가 일어나진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전문성이나 성과가 없는 사람에겐 "진짜 열심히 해"란 칭찬이 주로 붙습니다. 조직에서도 아직 무르익지 못했지만 마치 긁지 않은 복권처럼 열심을 인정하곤 하죠. "「그래도」 열심히 해" 라구요. 그러나 한창 성장단계인 사람에게는 가능성이란 말로 인정될 수 있어도 충분한 경력자로 프로의 기대치를 받는 이가 열심이란 말 밖에 없다면 그건 좀 생각해볼 일입니다. 열심이란 태도 외엔 딱히 인정할 게 없단 의미가 아닌지를요.
정말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번아웃이 왔다고 나가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이란 전력질주와도 같죠. 에너지를 잘 분배 못하고 매사에 강강강강으로 임하다 보면 사람마다 지속 기간이 다를 뿐 언젠가 고갈되는 타이밍이 오기 쉬우니까요.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는 성과가 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많은 걸 얻어서, 내 기대만큼 인정이든 보상이든 돌아오지 않아서 같은 것들이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쯤에서 「열심」이란 단어를 정의해 보겠습니다. 어떤 일에 집중해 열정적으로 대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앞에서 잠시 언급한 「성실」은?
성실은 꾸준히 최선을 다한다는 거라 정의합니다.
한자를 보아도 열심(熱心)은 뜨겁고 열정적 + 마음으로, 성실(誠實)은 정성스럽고 진득하게 + 열매로 이루어져 있지요.
앞에서 프로일수록 열심보다 성실이 중요하다 한 이유입니다.
뜨거운 열의로 뛰어드는 「열심」은 상대적으로 일시적이고 제한적입니다. 열심히 한다 해서 반드시 결과가 나오거나 잘한다 할 수도 없지요. 만약 영어 수업 시간에 수학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한다면? 열심도 목표지향적이고 결과지향적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목표와 결과는 인정과 보상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혹여 부족해도 열심히 했다는 주변의 인정, 엄밀히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위안과 주변의 위로일 수도요. 불 화(火)를 포함하는 한자의 의미처럼 열심인 사람의 모습은 보기에 뜨겁고 치열합니다.
하지만 「성실」은 결과지향이긴 합니다만 실제 열매를 맺고, 그에 이르기까지 지리한 과정과 노력을 진득하게 지속하는 걸 포함합니다. 성실은 꾸준함이고 그 모습은 겉보기에 미지근하거나 느슨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불처럼 뜨겁지 않아 보이죠. 성실의 성(誠)이란 한자 속에는 「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글자는 '이루다, 갖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제 이루는 것이고, 이루기 위한 것을 갖춘 사람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