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프로브톡 7화] 딱히 틀린 건 아니지만 ①
지난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며 '여기서 끊으면 오해들 하시겠는데..' 했어요. 역시나 그랬죠. 레터에서도 언급했듯 제가 사과하고 팀원들의 반응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이 "왜?"라고 하셨거든요.
한때의 제 부끄러운 일화이지만 제겐 꽤나 큰 충격을 주었고 더불어 많은 반성을 하게 된 계기여서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대에 제 사교육 관련 사업을 했어요. 사업을 하려고 의도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생계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룹을 만들었고, 조직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법 성공했습니다. 당시 고객은 대입 수험생과 그의 부모님이었는데 제가 20대였으니 학생은 큰 차이 안 났고, 학부형은 제 부모님 뻘이었죠. 그들에게 선생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가르치고 훈계하는 게 익숙했어요. 제가 함께 한 다른 강사나 직원들도 저보다 열 살 이상 많은 분들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기 안 눌리려 하다 보니 누르고 지적하는 잘못된 리더십이 강화되어 버렸어요. 30대 초반 다시 사업에 도전해 역시나 나이 많은 직원이나 아닌 직원들에게 같은 리더십(?)으로 대했으니 나쁜 것부터 배워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다 접고 대리로 들어가 시작한 조직 생활이 (너무 오만한 말이지만) 시시하고 같잖단 느낌마저 들던 때였습니다. 면접 때 작은 조직에서 이런 큰 회사 생활에 적응하겠냔 우려를 들었죠. 잘 배워야겠단 의지와 굴지의 기업에 들어왔단 기대도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지방의 작은 계열사가 합병한 후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입사해 신규입사자의 부적응 이전에 물리적으로 결합한 회사 자체가 불안정하던 시절이에요. 비교 안 되게 작은 회사였지만 이전 직장은 나름의 체계가 있었고 시스템으로 관리되며 일 빠르고 잘하는 직원들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컨설팅 회사들이 그러하듯 프로젝트는 멀티로 쉼 없이 돌아가고 납기가 명확하며 속도가 필수적이었죠. 큰 기업에 왔으니 어떨 거야라며 막연히 기대했던 모습은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모든 게 느리고 모든 게 겹겹이 있는 상사들을 거치며 무수히 번복되었죠. 아웃풋은 별 차이 없는데 앞단에 논의하고 기획안 수정이 너무 많더군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무척 컸어요. 거기에 팀원들은 조용했고 팀엔 뭔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미묘한 갈등도 존재했고요. 대놓고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그냥 싫다는 팀원도 있었고, 제게 정확한 업무가 배정되지도 않아 불만은 쌓여 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못된 것부터 배워버린 저는 "대체 왜 이렇게 해요?", "이해가 안 되네" 같은 말을 툭툭 내뱉었어요. 리더십에 큰 이슈가 있던 팀이었는데 하루는 CEO에게 팀 전체가 불려 간 적도 있습니다. 탁월한 인재였는데 팀장이 된 이후 계속 챌린지를 받는 이유가 뭐냐, 어떤 도와주면 되겠냐 하셨죠. 거기서 신규입사자가, 더구나 대리가 "경력사원들을 뽑으셨으면 그에 맞게 쓰셔야 하는 거 아니냐, 이전 멤버들하고만 일하려 하신다면 그냥 신입을 뽑으셨어야 한다"며 CEO에게 대놓고 이야기까지 했던 저였습니다. 작은 조직에서 일을 해왔다 보니 대표에게도 솔직하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 익숙했어요. (물론 그 조직들에서도 저는 되바라진 사람이었을 겁니다만) 대기업이란 조직에서 이게 얼마나 파격적이고 어이없는 일이었는지는 한참 일하면서야 알게 되었죠. 가뜩이나 지적질해대는 신규입사자, CEO한테 뭐라고 해버리는 대리가 팀원들에게 대체 어떤 이미지였을까요.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제가 알고 느끼는 것보다 더 비호감짓을 많이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지방 계열사 합병 후 70% 가까이 경력사원과 신입사원이 밀려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존 멤버들의 정서, 두 번째로 경력사원이 하지 말아야 할 모든 언행을 몸소 실천 중이던 사람에 대한 비호감, 세 번째로 위계가 분명한 보수적인 조직에서 시도 때도 없이 튀는 사람, 마지막으로 그냥 하는 짓 자체가 밉상이던 사람에 대한 동료와 상사의 껄끄러움. 이 모든 걸.. 네.... 제가 다 했습니다.
물론 당시 팀엔 문제가 없었냐 하면 많았습니다. 제 언행의 문제를 떠나 객관적으로 보아도 문제 투성이었어요. 서로 편이 갈렸고 돌아서면 뒷담화였으며 리더와 특정인의 천하였죠. 리더는 리스펙 받지 못했고 공공연하게 갈등이 노출되었으며 팀원 간에도 사이가 안 좋아 언쟁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갈등에도 공공의 적이 나타났으니 그게 저였던 겁니다. 그 갈등과 뒷담화를 보고 들으며 그걸 가지고도 "왜 앞에서 말을 안 하냐, 왜 회의에서 그런 말을 하냐"며 또 지적질을 했으니까요. (정말 부끄럽군요.... ㅠㅠ) 그런 저를 수개월 간 참다 팀장이 한 마디 했던 거였어요.
미성숙하기 짝 없고 안하무인이었던 제게 "바뀔래, 안 바뀌면 같이 갈 수 없다"는 리더의 말은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그전까지 이런 얘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학생들에겐 선생님이었고, 학부형에게도 슈퍼 을이었어요.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며 부모님 뻘 어른들이나 직원에게 거침없이 말하는 게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조직생활을 하며 꽤 오래 지적을 받아야 했어요. 되바라졌다, 건방지다란 말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죠. 이전 레터에서 말한 것처럼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사람'이 되어 누구도 제게 직언하지 않았어요. 성과가 괜찮은 편이었기에 못마땅한데 뭐라 하기도 애매한 사람이 되어 버렸죠. 그래서 팀장의 저 피드백이 제게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저조차 몰랐던 면은 울컥하거나 어이없어 발끈하지 않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던 모습이었죠. 그때 안 거예요. 피드백을 못 받고 살았구나라는 걸.
피드백을 해주었던 리더는 이후 역량이나 리더십 이슈가 많았음에도 제가 이 장면만큼은 두고두고 감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할 거예요.
1. 답답하고 이해 안 되어도 우선은 "다 이유가 있었을 거야, 이유부터 확인하자"며 동료나 선배들에게 정중히 배경 설명을 요청할 거예요. 2. 1번을 충분히 들은 뒤에 "이전 직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했는데, 적용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제안을 드려볼 거예요. 3. "잘 아시겠지만"을 붙이며 "제가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하려는 거니까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할 거예요.
이건 경력사원입문 교육 때마다 제가 늘 당부하는 내용 중 일부이기도 합니다. 이유가 뭐든 간에 이전 회사보다 낫다 판단해 입사하는 회사임에도 빨리 성과를 보여줘 인정받고 싶은 조급함, 이전 회사가 원수 같아도 어느새 이전 회사와 비교하는 말습관, 지금은 몰라도 이전엔 그게 최선이었을 것들에 대한 비난 같은 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죠. 결국 이 모든 게 자신의 조급함과 인정욕구에 기인할 텐데 머리로는 알아도 잘 되지 않곤 해요.
이게 안 된 상태에서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하다 하는 게 동료들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마음으로 배척한 사람이 "쏘리~"하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진정성은 커녕 무슨 쇼냐며 질색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어요.
물론 저는 지금도 그게 세련되었든 아니든 보통은 정공법을 택하는 편입니다. 사과할 게 있으면 바로 하고 내가 생각이 짧았다, 경솔했다, 심했다 인정하는 게 어렵지 않아요. 반성도 잘하고 사과도 잘합니다. 애초에 그럴 일을 안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벌어진 일엔 수긍도 인정도 빨라요. 이게 가장 솔직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행동이라고도 생각하고 있고요.
하지만 저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 다르게 접근할 겁니다. 리더에게 피드백을 준 것에 더 고마워하고, 제 사수(2화에 나왔던 분)에게 따로 상담을 요청할 겁니다. 저와 성향도 일하는 방식도 달랐지만 진지하고 성의 있는 분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리더와 사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겁니다. 다른 팀원들과는 어떻게 잘 풀지 방법을 같이 찾아봤을 것이고, 두 분 만큼은 그때그때 피드백을 가감 없이 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도 드렸을 거예요. 불만을 표하기 전에 제 업무를 좀 명확히 요청하고 완결형 업무로 배정받아 그걸 먼저 잘 해내며 신뢰를 쌓아갔을 겁니다. 당장 문제를 보면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만 매몰되어 제 기준, 제 속도로 타인에게 덥석 다가가진 않을 거예요. 제가 풀고 싶은 마음보다 상대가 마음을 여는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게 선행되어야 하는 걸 이젠 알겠거든요. 먼저 제 편을 만들고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게 먼저였어요. 여기에서 편이란 진심으로 겸손하게 도움을 청하고 제가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해 줄 분이고 그 과정에서 아낌없이 진심 어린 충고를 하실 수 있는 분을 의미해요.
제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알고 이해하는 사람 하나 없이, 이렇다 할 역할과 성과를 보여주기도 전에 성급히 판단하고 행동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요.
※ 너는 그렇다 치고, 그 팀은 어떻게 됐냐고요?
1년 후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