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그리고 서른다섯의 1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요즘 네가 자주 부르는 노래. 심수봉 선생님의 백만 송이 장미.
처음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너를 발견했을 때, 엄마는 정말 놀랐어. 엄마도 아는 노래이지만 집에서 틀어준 적이 없는 노래인데 후렴구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니!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까지만 해도 네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거침없이 후렴까지 정확한 음정으로 불러내다니. 얼마나 놀랐던지. 놀라움과 동시에 과연 네가 부르는 그 노래 가사의 의미를 얼마 큼이나 알고 있을까? 네 생각을 통해 듣게 되는 백만 송이 장미는 어떤 꽃인지 궁금해졌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건, 사랑만 계속해서 주는 것이라는 너의 말.
그렇게 해서 피어나는 꽃들 속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작아진다면,
그 꽃 속에 있는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너의 말.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사랑만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너의 말처럼 한없이 내가 작아지고 없어져야 가능한 일인 것 같은 오늘이었는데, 너는 벌써 그걸 알고 있는 걸까? 엄마는 오늘 마음이 정말 힘들었어. 차 안에서 잠들어있는 너를 뒤로하고 네가 틀어달라고 한 백만 송이 장미 노랫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을 만큼. 오늘 뭐가 힘든지 꼭 이야기해달라는 너에게 엄마가 정리가 되면 나중에 이야기해준다고 했지만, 끝내 얘기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지. 나중에 이 글을 읽을 때 그날이 어느 날이었는지도 기억하기 어렵겠지.
엄마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상황이 큰 노력 없이 잘 보이는 편이야. 그래서 얻게 되는 좋은 점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차라리 모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단다. 부디 바라건대 너는 그런 것들로부터 조금은 무딘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답게, 너답게, 다른 사람보다 네 감정이 제일 먼저인 너로 자랐으면 좋겠어. 물론 너무 말을 안들을 떼는 엄마의 노고도 좀 알아주었으면 싶지만 차라리 그 조차도 몰랐으면 좋겠다. 아니면 적어도 엄마와의 관계에서만이라도 말이야. 엄마는 어릴 때 애늙은이 같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좋게 이야기하면 어른스럽다는 말. 엄만 그 말이 칭찬인 줄 알았거든 어쩐지 의젓하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중학교 때였나 어떤 선생님이 그러셨어.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안쓰러워 보인다고 말이지. 어떤 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어렴풋이 아... 어른스럽다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닌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 엄마가 속상했던 오늘의 힘듦은 비슷한 결의 상황이었어. 끝내 너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타인의 감정 때문에 엄마의 감정을 지키는데 쉽지 않았던 날이었지.
너를 만나기 전이라면 그 힘듦에 며칠을 힘들어했겠지만 너를 만나고 나서 엄마는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그런 힘듦을 겪은 날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어. 아 이런 힘듦이나 이런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너에게 말해준다면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어떤 부분을 네가 알고 있어야 이런 상황을 겪을 때 조금이나마 네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엄마의 힘듦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돼서 중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해.
아... 이것도 너무 타인의 감정을 빨리 이해하는 부분에서 오는 건가? 싶기도 하네ㅎㅎㅎㅎ
아무튼 지금 시기의 발달사항이 그런지 원래 그런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아직 너는 너의 감정이 가장 중요한 때인 것 같아서 그 기질이 계속해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타인의 감정은 타인이 몫으로 남겨두고 네 마음과 네 감정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네가 되기를!
잘 자고 우리 또 만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