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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r 28. 2024

내 생애 가장 힘든 날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20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시간이 빨리 간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는 적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혼을 마음먹고 나서도 나와 석 달 이상을 같이 산 셈이니. 그렇게 오지 않길 바랐던 오늘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며칠 전부터는 특별히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나 또한 독립 준비를 해야 했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내와의 작별을 일주일 남겨두고부터는 시간이 정말 광속으로 흘렀고 결국 오늘 아침이 밝고 말았다.




요즘 들어 특히 약을 많이 먹고 있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 아침부터 마음에서 불안감이 올라올 때마다 그야말로 약을 때려 부었다. 아침부터 평소라면 하루종일 먹었어야 할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모두 먹어 버렸고 그랬던 덕분인지 걱정했던 것보다는 상태가 나았다. 그러나 그렇게 약을 먹었음에도 아침에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 보자며 안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약도 모두 소용이 없었구나... 약 덕분에 평소처럼 오열하지는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내의 이사 준비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나도 미처 다 싸놓지 않은 내 짐을 따로 분리해 놓아야 했고, 아내와 나의 지난 결혼생활 7년을 함께했던 매트리스는 아침에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그러고 나니 바로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이 들어오셨다. 사람이 많고 북적대니 조금 기분이 환기되었던 것 같다. 아내의 이사를 지켜보겠다고 처가에서 올라오신 장인어른과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벌써 3개월도 더 전이다. 눈 내리는 한밤중에 처가에 사정하러 달려 갔었던 때가. 그 이후로 처가 모임이 적잖게 있었지만 내가 참석할 수는 없었고, 장인어른과는 석 달도 넘어서만에 인사드리는 셈이 되었다. 별로 표정이 좋지 않으셨다. 그럴 만도 하다. 딸의 행복을 위해 시집 보냈건만, 결과가 이렇게 되었는데 어찌 좋으실 수 있겠는가. 장인어른께서는 내게 서운한 마음을 이럭저럭 토로하셨지만 크게 분노하시면서 화를 내지 않으신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좋은 또 하나의 식구들도 잃은 셈이 되었다.




그저께 재미난 일이 있었다. 내가 새로 이사 갈 집의 입주청소를 하느라 하루 휴가를 내고 쉬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아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덕분에 아는 형이 본인의 사무실 근처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산책을 함께해 주었고, 늦은 오후에는 친하게 지내는 교수님이 댁으로 부르셔서 다과를 내어 주셨다. 모두가 오랜 시간 내 푸념을 들어주어 가면서. 그런데 교수님댁에서 저녁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더니 아내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자긴 지금 퇴근한다며 저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내게 물었다. 무언가 인지부조화 같은 것이 오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틀 뒤면 별거하기로 되어 있는데, 같이 저녁을 먹자고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전화라니. 세상에 세상에 쿨녀도 이런 쿨녀가 있나. 덕분에 그날 아내가 집으로 오면서 시켰던 피자를 둘이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아내와의 진정한(?) 마지막 만찬이었다.


왜 갑자기 며칠 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가 하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우리는 이혼을 앞두고 있고, 오늘부터 별거에 들어가는 사인데 아내는 내게 이런저런 부탁을 했다. 우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0시에 당근으로 화분을 가지러 오시는 분이 오실 거야', '나는 먼저 가야겠다. 여기 마무리 좀 잘 부탁해' 그리고 아내는 둘 다 이사가 끝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따로 한 번 같이 밥이나 먹자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올까? 그리고 그때 나는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그렇게 아내는 이사가 한창인 가운데 나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본인이 이사 갈 집으로 먼저 떠나버렸다.




브런치를 통해서 하나 배운 것이라면 다른 분의 브런치를 통해서 이렇게 정말 별거를 하게 되는 날이 심리적으로 정말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오늘 정신과 상담을 예약해 두었었다. 지난주에 심리상담을 갔을 때, 상담사분께서도 오늘 상담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었는데 다행히(?)도 나는 이미 병원에 예약을 해 둔 상태였다. 이사 차를 보내고 나서 내일 있을 나의 이사와 관련해 동네 부동산을 잠깐 들린 뒤에 바로 정신과로 향했다.


의사선생님 앞에서 그렇게 대성통곡하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오늘이 그만큼 힘든 날이었단 뜻이다. 아침부터 그렇게 약을 먹었는데도 눈물이 그렇게 멈추질 않다니. 그런데 오늘의 상담은 내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루가 다 지나고, 여러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의사선생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모두 기억 나지는 않는다. 요지는 지나치게 자책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것, 사람의 감정은 어쩔 수가 없고, 우리가 모두 알 수 없다는 것, 특히 내가 계속해서 자책하고 후회하는 것이 엄청 염려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기애는 기를 수 있는 것이고 변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 자책을 줄이고 지난날을 미화하지 말며, 자신에 대한 사랑을 길러 나가라고 그런 쪽으로 상담을 이어 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보다도 나이가 어릴 것 같던데, 어쩜 그렇게 내게 딱딱 맞는 말씀만 하시는지. 덕분에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많은 위로가 되었다. 잠시나마 희망에 차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후에는 이사 갈 동네로 가서 PT를 등록했다. 작은 단지여서 따로 커뮤니티센터 같은 곳은 없는 곳인데 마침 근처에 공립체육센터가 좋은 곳이 있다. 어쩌면 두세 달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맞게 내가 원하는 요일 원하는 시간에 딱 자리가 나 있었다. 당장 다음 주 화요일부터 시작할 수 있겠냐고 물어왔고,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오늘 하루 중 가장 환희에 차 있었던 순간이라고 생각된다. 새로운 동네에서는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뜻일까! 일희일비의 대명사답게 체육센터와 바로 옆에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만들 때까지는 기분이 괜찮았다. 그러나 금세 내 짐을 정리하기 위해 동네로 오면서 다시 나는 바로 어두워졌다.


의사선생님도 말씀하셨던 것 같다. 감정이 엄청 약한 사람인 것 같다고. 살면서 뭐 힘든 일을 별로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아내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내가 4년이나 살았던 동네를 떠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척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가졌을 것이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사조차도 쉽지 않은 난데, 하필 이번엔 이혼이 겹쳤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저녁에 동네를 걷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서울에서 4년씩이나 살았던 동네가 없었구나. 이곳이 처음이구나. 대학을 다닐 때는 한 번에 5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았었지만 그때는 방학 때마다 집에 내려오기도 했고, 젊은 대학생 시절이었다. 군대에 갔을 때부터 한 부대에서 3년을 보냈고, 이후로도 계속 신기하게 3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4년이나 한 집에서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사라면 이골이 난다.)


고작 3년을 살았을 뿐인데도 이사할 때마다 정 들었던 동네를 떠나는데 여간 힘들지 않았었는데, 처음으로 4년을 사는 동네를 떠나면서 내 인생의 8년을 함께 보낸 아내와도 이별해야 한다니. 감정적으로 지금 나는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그런데 여기에 이혼과정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겹쳐서 자기혐오와 미움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앞으로 다시 예전 같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의사선생님께서 오늘은 보기에 너무 안 되어 보였는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느냐는 물음까지 꺼내셨다. 그래서 내가 무려 40개월이나 군생활을 했지만 나는 운 좋게 편한 부대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덕분에 크게 힘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렇게 답하다 보니 바로 또... 아내도 분명히 나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의 과실로 놓치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의사선생님께도 나 같은 환자는 도전이 될 것 같다. 기껏 그렇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나면 다시 도돌이표라니...




정말 힘들었던 하루지만 어쨌든 저물어 간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또 살게 되겠지. 짐을 옮기고 나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처음 신혼집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도 아무런 살림도 없었다. 아내가 유일하게 주문해 놓았던 소파를 빼고는. 그렇게 세탁기, 냉장고, 옷장 등등이 천천히 하나씩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과정을 밟으면 되겠지.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는가.


나는 분명 이번 결혼생활에 실패했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아내와 같은 좋은 배필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하지 말기로 하자. 뭔가 또 길이 있겠지.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이 모든 걸 떠나서 혼자서도 충만하게 잘 지내고 씩씩하게 살 수 있는 법을 익히자. 그래야 둘도 될 수 있는 것일테니. 내일은 그렇게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내일의 태양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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